어둑어둑해지는 길을 힘차게 걸어나갔다.
자견이 대옥을 따라 미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자견은 대옥이 저러다가 또 쓰러지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해 하며 걸음을
빨리하여 대옥의 뒤를 바짝 좆았다.
대옥이 대관원 정문을 나와 대부인의 처소에 도착하자 대부인을 뵈올
생각은 하지 않고 보옥의 방으로 먼저 들어갔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대옥으로 인하여 습인과 다른 시녀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에 대옥이 다짜고짜로 창가 의자에 앉아 있는
보옥에게로 다가가 자기도 그 옆 의자에 앉았다.
마침 보옥은 어두워지고 있는 뜰을 내다보며 히죽히죽 실없이 웃고
있었다.
"도련님이라고 부를까, 오빠라고 부를까?"
대옥이 전에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보옥에게 당돌한 태도로
묻고 있었다.
"도련님이라고 불러야지. 오빠라고 부르면 길이 막히지"
보옥은 길이 막힌다는 말을 혼인을 치르는데 장애가 된다는 뜻으로
들먹이는 것 같았지만, 대옥은 단순히 부정의 뜻으로만 받아들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보옥 자신도 옆에서 시녀들이 대옥과 혼인하게 되었다고
수군거려도 아직까지는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럼 도련님이라고 해야지. 도련님은 왜 그렇게 멍하게 앉아 있어요?
무슨 병에 걸린 거예요?"
보옥은 대답은 하지 않고 여전히 싱긋이 웃기만 하였다.
그러자 대옥은 마주보며 비죽이 웃었다.
습인과 자견이 볼 때 보옥과 대옥 두 사람다 실성을 한 가운데
횡설수설하고 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금과 옥의 인연이 나은가, 나무와 옥이 인연이 나은가?"
대옥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옥은 옥을 만나야지. 히히히히"
보옥이 갑자기 뭐가 좋은지 손뼉을 치며 깔갈 거렸다.
"호호호호. 옥이 옥을 만나면 둘 다 깨어져요"
대옥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따라 웃었다.
"깨어지지 않아. 깨어지지 않는단 말이야"
보옥이 의자에서 일어나 대옥에게 대어들려고 하였다.
"자견아, 아무래도 안되겠어. 아가씨를 모시고 소상관으로 돌아가.
대옥 아가씨도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으니까 잘 쉬시도록 하고 간호를
잘해드려"
습인이 자견에게 급히 속삭이며 자견을 대록쪽으로 밀어부쳤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