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개혁위원회가 대부분의 핵심쟁점사안에 대해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함으로써 일단 노사개혁은 "시계제로"의 상태에 빠졌다.

아직 한두차례의 전체회의가 남아있는 상태이지만 개혁과제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다뤄질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노개위 내부에서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데다 노사
양측이 상당수의 민감한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데 성공했기 때문에
"비관은 금물"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다.

19일 발표된 노사관계법 개정요강 소위원회의 성과를 살펴보면 이른바
"3제 3금" 가운데 해결된 사안은 단 1건에 그치고 있다.

즉 변형근로시간제 근로자파견제 정리해고제등 "3제"와 복수노조금지
제3자개입금지 노조의 정치활동금지등 "3금"의 핵심쟁점 가운데 "노조의
정치활동금지" 규정만 철폐하는데 합의했을뿐 나머지 "협상"은 결렬된
것이다.

이같은 양상은 이들 쟁점에 대한 노사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데다 사안들이 워낙 복잡하게 얼퀴어 있기 때문이다.

복수노조허용문제는 뜻밖에 노조전임자 임금지급문제와 연결되는 바람에
합의점을 찾는데 실패했으며 변형근로시간제의 경우 법정근로시간의 단축
문제와 연계됐다.

복수노조허용여부는 당초 상급단체까지만 허용하는 선에서 절충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돼 왔었다.

각 이해집단들의 "샅바싸움"도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얻을 것"은 얻고 "양보할 것"은 주는 자세보다는 우선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협상논리가 내내 이어졌다.

노사협의회제도나 근로자파견제가 아예 제2차 개혁과제로 유보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핵심쟁점들에 대한 합의결렬은 이미 합의된 다른 사안들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번 개혁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조합비상한규정 삭제및 노조조직형태의 변경조항신설등 상당수의 안건이
"3제 3금"의 "타결"을 전제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노사양측이 끝까지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개혁의 취지는 퇴색하고
말 것"(한국노동교육원 이정택박사)이라는 우려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개위 내부에서의 논의과정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와
성과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의견들도 많다.

그동안 수차례의 공청회및 공개토론회를 통해 노사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됐으며 노사양측이 "흉금을 터놓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과정에서 한때 행정쇄신위원회의 주요 개혁과제로 상정되기도 했던
노동위원회에 대한 개혁안이 도출됐으며 노동조합에 대한 행정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또 쟁의신고제도대신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하고 공익사업의 조정절차를
개선하는 방안이 노사합의아래 만들어졌다.

신축.재량.인정근로제의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것도 개혁의 성과물
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개위의 배무기상임위원은 "이들 안건은 노사개혁이전에 논의자체가
불가능했을 정도로 해결이 어려웠던 것들"이라며 "변형근로제와 정리해고제
의 경우도 비록 단서조항 때문에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논의자체는
상당히 활발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노사개혁의 단계인 셈이다.

결국 이번 노사개혁의 성패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희구하는 노사양측의
의지와 개혁에 대한 열성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