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은 지난 9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포겔
미 시카고대교수의 방한을 맞이하여 안충영중앙대교수와 특별대담을
마련했다.

포겔교수는 경제사와 계량경제분석방법론을 접목, 계량경제사의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열어주목 받고 있다.

그는 "한국경제의 장기발전을 위해 진입장벽이 존재하지 않는한 정부가
사업다각화등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한국은 경제구조개편의 일환으로 장기적 관점에서 "고급두뇌자본"을
육성하는데 진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 대담 = 안충영 <중앙대 교수> ]]

<> 안교수 =교수님께서는 계량적 접근으로 경제사를 서술해 세계경제
학계에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교수님의 학문세계는 어떻게 요약될 수 있겠습니까.

<> 포겔교수 =사이먼 쿠즈네츠교수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경제성장의 패턴과 기술변화가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근대적 기술은 지난 2백년간에 걸쳐 발전됐습니다.

과거변화에 대한 진단이 이루어질때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과학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현재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면 미래전망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 안교수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경제는 지난 30여년동안 압축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쿠즈네츠교수의 장기성장발전패턴을 적용해 동아시아경제발전을
평가하신다면.

<> 포겔교수 =한국과 다른 동아시아의 경제는 선진국의 발전경험에 비추어
예외적이라고 할만큼 초고속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제성장도 선진국 경제성장패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농업분야를 개발한후 공업화로 진입하는 패턴은 현재 중국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 안교수 =역사학자 토인비는 13세기까지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문화가 우월했고 이후 지금까지는 서양문화가 득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부터는 세계경제발전의 중심이 다시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옮겨오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포겔교수 =1750년까지 중국은 세계 최고의 부자국가였습니다.

오늘날 서구가 이룩한 근대경제성장역사는 2백여년에 불과합니다.

근대경제성장의 핵심은기술의 급속한 확산과정으로 해석해야 됩니다.

21세기초에는 인도와 인도네시아등으로 기술이 확산될 것입니다.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는 앞으로도 세계 최대소비시장이 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입니다.

21세기가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데는 별 의의가없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독일의 기술수준을 압도하려면 앞으로 두 세대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안교수 =동아시아경제기적을 설명하는데 거시경제변수의 안정적 유지,
인적자본육성, 사회간접자본건설, 전략부문에 대한 정부의 효율적
개입이외에도 집단주의가치관및 교육을 중시하는 유교문화와 이념의
영향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 포겔교수 =지적하신 요인들은 모두 시장경제가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보완적기능을 했습니다.

지난 60년대에 모든 개도국이 구소련식 발전모델을 답습했습니다만
현재의 동아시아고속성장국가들만이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추구했습니다.

유교적 문화풍토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에 대해서는 좀더 검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나라가 미국 영국 프랑스등 대서양모델을 그대로 따를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뮈르달교수가 "아시아드라마"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인도의 후진성은
서구형 윤리가치와 모델을 도입하지 않았던 탓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과정을 살펴볼때 가족제도등 집단주의 가치관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나 서구보다 우월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합니다.

경제성장에 알맞는 "문화"가 정형화돼 존재한다는 가설은 성립하기가
힘들죠.

서구에서도 가족제도는 오래전부터 중요시 됐습니다.

앞으로 경제성장의 관건은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이기 때문에
종교적 문화적 가치에의해 이들 기술개발이 저해되서는 안됩니다.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이 촉진될 수 있는 토양을 일궈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안교수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과 함께 최근 세계경제성장의
흐름은무국경시장경제체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체제전환기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같은 세계경제흐름에 통합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러면 정치적 다원주의가 반드시 수반되야 한다고 봅니다만.

<> 포겔교수 =중국과 러시아 모두 세계경제에 통합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러시아보다 훨씬 빠르게 통합될 것입니다.

중국은 전체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정책은
"시장경제촉진형"으로 진행되고있습니다.

중국의 지도층이 경제성장지향적이기때문에 등소평사후에도 고속성장을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에도 대중적 민주주의가 언젠가는 정착돼야 합니다.

서구에서 근대적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도 정치적인 대중적 민주주의가
건재한데 따른 것입니다.

개도국이나 체제전환국에서 민주주의가 경제성장과 함께 병행 발전되야
되며 서구의 기준에 의한 일방적 민주주의 강요는 오히려이들 국가의
민주주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됩니다.

<> 안교수 =80년대에는 일본의 경제적 효율성이 미국을 앞서, 세계
경제일등국으로 평가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90년대에 정보화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자 미국은 재빨리
"인포메이션 슈퍼하이웨이"등 정보화산업의 인프라를 확충, 정보기술의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경제효율면에서 다시 일등국의 자리를 탈환했다고
봅니다.

<> 포겔교수 =80년대 경제효율면에서 미국경제가 일본에 뒤처졌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진단입니다.

산업면에서 미국은 화학, 약학분야에서 절대우위를 보였습니다.

다만 일본은 소형자동차분야에서만 앞섰습니다.

90년대 들어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추격하지 못할 만큼 바이오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동차산업은 이제 50년대처럼 높은 성장산업이 아닙니다.

포화상태에 이른 산업입니다.

노후화된 차를 바꾸어가는 정도의 수요가 있을 따름입니다.

<> 안교수 =세계 경제는 지금 NAFTA(북미자유무역지대)EU(유럽연합)등
지역단위의 배타적 경제통합은 자유무역주의를 이념으로 하는"세계주의"로
가기 위한 잠정적 현상으로 그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포겔교수 =물론입니다.

미국이 80년대 후반이후 보호무역주의기조를 취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의 관료들이 보호무역주의 기치를 드는 것은 경제적 자살행위나
다름없습니다.

<> 안교수 =압축성장과정에서 한국은 중화학을 의도적으로 조기육성하면서
금융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사업다각화와 더불어 대기업집단에 의한 경제력집중,
소유집중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반면 글로벌화된 세계경제흐름에 부응,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재벌의 대외경쟁력을 계속 강화, 기업규모는 오히려 확대되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 포겔교수 =중화학공업은 대규모 투자없인 불가능합니다.

자동차나 반도체산업은 소규모 경영단위로 분해될 수 없습니다.

사업다각화는 위험에 대한 회피수단(헷징)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AT&T가 좋은 예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시장의 힘에 의해 대기업집단이 분해되고 있습니다.

걱정해야 할 부분은 신규진입을 가로막으려는 대기업집단의 조직적
행위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행위가 없다면 재벌에 의한 경제력집중문제는 정부가 직접
나서기보다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적으로 해결되도록 해야 합니다.

<> 안교수 =한국에서는 이밖에도 재벌에 의한 금융과점이 중소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습니다.

<> 포겔교수 =채권시장을 발달시켜 정크본드의 발행과 유통을 활성화,
중소기업의 숨통을 터주는 것도 고려해봄직합니다.

<> 안교수 =한국의 제1세대 대기업회장들은 권위주의형 경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전문경영인에 의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정입니다.

<> 포겔교수 =미국과 유럽의 경우 친자경영승계를 한 회사들이 사업실패를
한예가 많습니다.

경영의 유연성과 전문성을 희생하면서까지 친자승계를 할 경우정부의
보조금 지급중지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수단이 없을 때 정부가 개입하여 강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절대
지양돼야 할 것입니다.

이 역시 시장의 힘이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 안교수 =교수님께서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행한 기업윤리강연을
통해 공해 흡연 뇌물등 광범위한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흑자경영과 함께 고용확대를 창출하는 기업가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 포겔교수 =미국의 경우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의식은 사회공익활동에서
매우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퇴임이후 이들의 공익활동은 대단할 정도입니다.

한국의 경우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보다 맨주먹으로 당대에 사업을
일으킨예가 많습니다.

교육 언론 여론조성등 범국민적 노력과 이해가 어우러져야 기업가들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자연적으로 성숙될 것입니다.

<> 안교수 =한국경제는 지금 중대한 전환기에 처해 있습니다.

영국의 임금수준과 맞먹을 정도로 고임금경제가 돼 버렸습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6%를 약간 웃돌 전망입니다.

조기퇴직제도 상당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 포겔교수 =6%대의 경제성장률이 위기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아시아등 새로운 시장으로 수출확대를 전개해야 합니다.

또 연금제도 시간제인력수급제도등을정착시켜 조기퇴직제에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 안교수 =한국경제는 이제 노동.자본집약에서 벗어나 지식.기술산업
구조로 전환해야 된다고 봅니다.

선진국의 사양산업을 물려받던 기러기편대형 발전전략을 구사할 시기는
이제 끝났습니다.

모든 업종에서 선진국과 함께 전면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크루그먼교수는 노동.자본집약주도 성장으로 지금까지달려온 동아시아
경제기적의 한계를 예언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포겔교수 =크루그먼교수과는 다른 생각입니다.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하고 노동생산성이 정의 값을 가지고 있는한
한국경제는 계속 성장할 것입니다.

동아시아에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등 세계 최대의 미래시장이 있습니다.

한국은 자본집약산업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이들 미래시장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장기적 성장전략은 고급두되자본을 지금부터 철저하게 양성하는
것입니다.

대만은 GNP의 1%에 해당되는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몇십년이 걸리는 고급두뇌
자본양성에 구체적 계획을 수립해야 합니다.

< 정리=김홍열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