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학을 하는 사람들은 야외작업이 잦다.

때론 심마니들의 발길조차 닿지 않은 깊은 산속을 며칠씩 헤매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연구재료인 암석시료를 얻기 위해서다.

그래서 스스로를 "산적"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에는 산적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요즘들어서는 새로운 부류가 생겼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해적"이다.

바다밑 광물자원탐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있다.

한국자원연구소 석유.해저자원연구부 최헌수박사(37)도 혈기왕성한 해적
으로 분류된다.

지난 94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년간의 시간강사생활을 정리한 뒤
자원연구소에 들어와 얻은 새로운 명함이다.

그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심해저 자원탐사".

합법적 노략대상은 5,000m 바다밑에 널려있는 "망간단괴"이다.

그는 이미 지난 5월 해양탐사선인 온누리호를 타고 태평양 한가운데를
누볐다.

정확한 위치는 북위 9~18도, 서경 123~138도 일원 15만평방km 규모의
"하와이 C-C" 한국광구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8월 유엔으로부터 이 지역에 대한 개발권한을 인정
받았다.

지금까지의 조사결과 이 지역에는 평방m당 5~10kg의 망간단괴가 자갈처럼
촘촘히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려 1억t이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

오는 98년 50%를 유보광구로 유엔에 반납하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 본격
채광작업을 벌인다는게 기본 구상이다.

어느 지역을 유보광구로 내놓고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채광활동을
벌이느냐는 그와 그가 속한 팀의 연구결과에 달려 있다.

그의 세부연구과제는 "망간단괴의 광물학적 조성분석"으로 특히 중요하다.

수집해온 망간단괴를 모양 크기 외부조직별로 분류하고 각각에 대해 X선과
현미경작업을 통해 어떤 광물이 어느정도 함유되어 있는지 조사, 경제성을
평가해 채광대상지역 결정을 뒷받침하는 일이다.

그는 단괴내에 3%정도 포함되어 있는 니켈과 코발트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집중매장되어 있는 러시아나 아프리카지역의 정세에 따라 국제시세가 심한
요동을 거듭하고 있는 차세대 전략광물이어서다.

나머지 채광과 제련방법등은 연구소내 협력팀들의 몫이다.

어려운 작업들이기는 하지만 모두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것으로 그는
확신하고 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그의 낙관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소속팀은 물론 협력팀 선배연구원들의 진용이 워낙 탄탄하기 때문
이다.

자원연구소가 순수해양자원탐사선인 2,000t급 "탐해2호"를 올해말 인도받게
되면 해양자원관련연구가 보다 활성화될 것이란 기대감으로도 한껏 부풀어
있다.

그는 그러나 요사이 조금 혼란스럽다.

해양부신설에 따른 관련업무 이관을 둘러싼 잡음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좋은 연구결과는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할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서 비롯
된다"는 그는 하루빨리 부처간 이기주의싸움이 해소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