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안된다.

경제의 기본틀을 새로 짜야 한다''

독일이 대대적인 경제기본틀의 개편작업을 벌이고 있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탄탄한 경제로 정평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독일경제는 경기부진과 재정적자확대로 휘청대고
있다.

특히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건비와 엄청난 사회보장세, 종업원편인
근로조건, 정부의 각종 규제 드응로 죽을 맛이다.

이 때문에 독일기업들은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는 일이 그 어느때보다
빈번해 지고 있다.

국내산업의 공동화가 우려될 만큼 독일내 사업여건은 좋지 않다.

고임과 각종 규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기업들과 동병상련의
처지이다.

이렇게 되자 정부와 업계는 손을 맞잡고 경제틀의 새판짜기에 나섰다.

경제틀 새판짜기의 핵심은 독일경제의 오랜 관행인 "사회적 계약
(social contract)"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는 것.

정부와 업계 모두에게 대대적인 개혁이자 혁신작업이다.

전후 독일의 업계는 노사합의로 모든 일을 결정하고, 정부는 각종
사회보장세를 많이 거두는 대신 복지를 강화해 국민들의 생활을
보호해주는 독일식 복지사회주의인 사회적 계약속에서 세계최강의
경제를 일궈냈다.

그러나 90년대들어 국제경쟁이 치열해지자 독일기업들은 기술만으로는
생존하기가 힘들어졌다.

또 정부는 유럽단일통화도입에 필요한 경제조건을 맞추기 위해선
고비용.저효율의 사회적 계약체제를 더이상 유지할수 없는 지경이 됐다.

독일경제의 새판짜기는 지난 13일 그 막이 올랐다.

국민들의 반대와 야당의 훼방을 누르고 헬무트 콜총리가 이끄는
연립정부는 사회보장비감축을 골자로 하는 예산긴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유럽단일통화가입조건인 국내총생산대비 재정적자비율을 3%이하로
끌어내리기 위해 공공지출을 700억마르크 줄인다는 것이 긴축안의
핵심내용이다.

이 긴축안이 통과되자 국민들은 이날을 "암흑의 금요일"이라고 한탄했다.

노조단체들은 "전후 반세기동안 유지돼온 사회적 계약의 종말을 알리는
서막"이라고 규정했다.

콜정부는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연말안에 실업수당 국민의료비
연금등 사회보장지출을 대폭 줄이는 또 다른 법안을 의회에 제출, 통과시킬
계획으로 있다.

또한 기업들의 사업환경을 개선해 주기위해 규제완화및 철폐를
추진중이다.

현재 기업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부규정은 모두 8만4,000개나 된다.

이중 상당수를 없애거나 규제내용을 완화해 기업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필요없이 국내에서 보다 쉽게 사업을 할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목적에서다.

현재 65%인 법인세율 상한선도 99년에는 40%로 인하할 계획이다.

근로자들의 퇴직연령을 상향조정, 국가연금을 받는 기간을 단축시킴으로써
재정지출을 최대한 줄인다는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경제틀의 새판짜기에는 기업들도 매우 적극적이다.

업계는 노사협상방식의 변경을 통해 새판짜기의 첫 깃발을 세우고 있다.

지금까지는 각 업체의 상황을 무시하고 동종업계의 사용자단체와
노조단체가 일괄적으로 임금인상률과 근로조건을 결정했다.

그결과 기업들은 각자의 독특한 회사사정을 노사협상에 반영할수 없어
큰 어려움을 겪곤 했다.

이때문에 기업들은 지금까지의 통합노사협상관행에서 탈피,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노사협상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임러벤츠그룹과 지멘스등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앞장서서
노사협상방식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노사협상방식을 바꾸는 것과 함께 기업들은 유급 병가제의 개정작업도
벌이고 있다.

근로자들은 현재 병가의 경우,6주일까지 월급의 100%를 받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80%로 줄여야 한다며 정부측에 관련법의 개정을 건의중이다.

기업들은 바로 이같은 임금구조가 독일을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비싼
나라로 만든 직접적인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독일제조업계의 시간당 평균임금은 30달러로 두번째로 높은 일본에 비해
6달러이상 높다.

미국보다는 무려 13달러나 많다.

독일업체들은 또 경영효율을 높이기 위해 미국식 주식옵션제까지
도입하고 있다.

폴크스바겐등 주요 대기업들은 주가가 일정 수준으로 올라가면 자사주식의
매도를 허용, 직원들로 하여금 경영실적을 끌어 올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일본기업 못지않게 종업원들에게 평생일터를 제공해온 독일업체들이
감원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경제기본틀의 수정작업 일환이다.

안정된 직장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라고 여겨온
독일기업들이었다.

독일정부는 공공지출을 축소하고 고임금구조를 타파하는 일이 국민들에게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필요한 지상과제로 여기고 있다.

특히 콜총리는 오는 98년에 끝나는 임기안에 독일경제의 틀을 완전히
재편한다는 각오로 전통적인 독일식 사회적 계약체제에 메스를 대고 있다.

< 이정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