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생활용품시장의 양대산맥인 네슬레와 유니레버가 치열한 시장쟁탈전을
벌이는 가운데 이들 양사가 추진하고있는 경영전략이 극명한 대조를 보여
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두회사 모두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장환경속에서 살아남기위해 새로운
경영전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데는 인식을 같이 하고있다.

그러나 이들이 취하고 있는 접근방법과 속도에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지난 80년대말부터 매출과 이익면에서 네슬레에 밀리기 시작한
유니레버입장에서는 실지를 회복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있다.

그만큼 개혁 속도도 빠를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해 네슬레는 다소 느긋한 편이다.

경영혁신은 하되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앞선자의 여유같은 것이 풍기기까지한다.

무엇보다 경영전략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경영지휘체계부터가
다르다.

1인지도체제를 도입한 네슬레에 맞서 유니레버는 투톱시스템을 채택했다.

네슬레가 마케팅의 귀재인 오스트리아출신 피터 브라벡에게 경영을 일임한
반면 유니레버는 아일랜드출신의 모험성향이 짙은 니얼 피츠제럴드와
네덜란드출신의 신중한 모리스 타박스블랫을 기용, 이들 둘간의 견제와
조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사등 조직관리에 있어서도 두회사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물론 경영부진에 대한 문책성인사이긴하지만 유니레버는 최근 고위급
임원을 대폭 물갈이해 버렸다.

지금까지 느슨했던 명령및 지휘체계에 일대 메스를 가했다.

또한 임원의 업무능력과 성적을 평가하는 보다 엄격한 시스템도
마련했다.

복잡한 이사회제도도 수술대위에 올랐다.

경영전략수립과 수행기능이 혼재해 있는등 이사들의 영역분담이
불분명했다.

심지어 몇몇 이사들은 이 두가지 기능을 한손에 쥐고 행사했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유니레버에서는 다반사였다.

자연히 효율적인 업무수행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에대해 타박스블랫회장은 "탁월한 전략은 갖고있었으나 발빠른 실천이
뒷받침되지 못했다"고 말해 경영부진이 조직의 비효율성때문임을 간접
시인했다.

이에반해 네슬레의 임원인사는 소폭에 그쳤다.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데 굳이 사람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네슬레는 신진그룹으로의 경영권이양도 상당히 느린편이다.

50대회장들이 경영을 맡고있는 유니레버에 비해 고희를 바라보는
헬무트 마우처회장이 오는 2000년전에는 자리에서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물론 경영의 많은 부분을 브라벡회장내정자에게 물려주긴했으나
마우처회장이 여전히 경영일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마우처회장은 지난 15년동안의 "철권통치"때문에 독재자라는 별명을
얻긴했으나 그의 탁월한 경영수완은 타의 추종을 허락지않았다.

이것이 권력이양을 더디게하는 한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급변하는 경영환경속에서 이같은 "느림보"세대교체는 50대회장을 과감히
중용한 유니레버와는 좋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신규사업진출에서도 이 두회사는 비교가 된다.

유니레버는 신규사업이나 기업인수합병에 있어서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해왔다.

한예로 이회사는 지난 10여년간 "월스"브랜드로 아이스크림시장을
장악해 그여세를 몰아 다른 사업으로 진출을 꾀할 수도 있었으나
그 호기를 놓치고 말았다.

유니레버는 그러나 앞으로도 무모하게 사업을 확장할 생각은 없다.

최근에는 이익을 내지못하는 부문은 과감히 도려냈다.

가공육과 (대중)화장품에서 손을 뗐다.

리스트럭처링을 통해 남는 인력과 돈을 수익성있는 다른 부문에 집중
투자한다는 전략이다.

이에반해 네슬레는 다양한 분야에서 좀더 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해왔다.

투자에 비해 이익은 많지않지만 이회사는 30억달러를 투자, 생수시장에
뛰어들었다.

또한 영국 라운트리초콜릿회사를 인수해 초콜릿사업을 2배가까이 키우는
한편 미국 알콘사를 사들여 콘택트렌즈사업에도 손을 댔다.

네슬레의 공격적인 문어발식 확장은 여기서 그치지않았다.

이탈리아 뷰토니사를 집어삼키면서 식품시장에도 발을 들여놓았다.

한마디로 이익이 남는다면 모조리 챙긴다는 전략이다.

시장개척전략도 판이하다.

유니레버가 아시아등 신흥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네슬레는
신흥시장은 물론 기존시장도 소홀히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유니레버는 오는 2000년까지 전체매출액의 30%를 신흥시장에서
긁어모은다는 전략을 세웠다.

현재 이계획은 목표치를 향해 한발 다가서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신흥시장집중전략은 연구개발센터의 현지화에도 일조를 했다.

현재 유니레버는 전세계 50여개의 R&D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이에따라 현지소비자 구미에 적합한 제품의 신속한 개발이 가능하게됐다.

당연히 시장침투도 용이해졌다.

네슬레는 여기서도 여유만만하다.

다가올 시장변화를 미리 예측해 이미 전략을 짜놓고 있기때문에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지금껏 해온대로 보다 많은 시장에서 보다 많은 제품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입장이다.

아무튼 다가오는 21세기의 새로운 비즈니스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이 두 라이벌업체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 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