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유럽의 문화도시로 지정된 덴마크수도 코펜하겐.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15km 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철도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적인 유럽풍 소도시인 인구 4만여명규모의 발러럽(Ballerup)
자치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5분정도 더 가면 거대한 공원
건너편으로 저층의 주택들이 벽을 맞댄 형태로 잇따라 늘어서 있는
에게비에르가르트(Egebjerggard)주택단지가 모습을 나타낸다.

이곳이 바로 프랑스의 유명 건축잡지인 "Urbanisme"이 최근 전세계에서
둘러볼만한 15대 주택단지가운데 하나로 선정, 세계 각국 건축가들의
순례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덴마크내 대표적인 뉴타운이다.

이곳은 전체 12만평의 대지에 단독주택, 공공주택, 아파트 등 3층이하
주택 900여채가 20개 블록으로 나눠져 널찍한 잔디공원과 호수들에 둘러싸여
있다.

한가구당 활동공간도 100평정도에 이른다.

주거단지의 규모로만 본다면 이곳은 우리가 말하는 "신도시"라기보다
소규모 택지개발지구에 가깝다.

그러나 에게비에르가르트 뉴타운은 기본적으로 인근의 발러럽자치구에
대부분의 자족기능 및 도시기능을 의존하는 전용주거단지로 조성됐다.

그래서 단지조성주체인 발러럽자치구는 쾌적한 녹지확보를 위해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호수들과 오크나무숲이 어우러져 있던 이곳을 처음부터
개발대상지로 삼았다.

그런만큼 무엇보다 쾌적하고 안락한 주거환경조성에 최우선적인 가치가
두어짐으로써 주택단지개발의 새로운 정형을 제시하고 있다.

에게비에르가르트 뉴타운은 지난 60년대 대규모 주택단지나 독립가옥
형태의 전통적인 덴마크 주거형태에서 생기는 주민간 익명성과 단절현상,
이로인한 주민상호간 및 계층간 소외감, 범죄증가 등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도시구성원사이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단지건설을 목표로 계획됐다.

이에따라 지난 85년 발러럽자치구가 실시한 건축설계 공모전을 통해
입상된 작품을 모델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5단계로 단지조성이 이뤄져 현재 마무리공사가 진행중인 이 단지의 가장
큰 특징은 주민간의 만남과 교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 단지설계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전체 단지를 4개의 주거단지로 나누고 이를 주요도로를 따라 다시
20개의 블록으로 배치했다.

각 블록은 하나의 독립된 주거공간을 형성하며 블록사이에는 공동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특히 연립주택형식으로 여러채가 연결된 블록의 1층 전층은 "공용의
공간"으로 설계됐다.

이곳에는 당구장, 탁구장 등 간단한 스포츠놀이시설이 설치돼 있고
주민공동관심사를 토론하기 위한 집회나 연주회, 파티, 손님접대 등 각종
행사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이 "공용의 공간"을 통해 주민간의 대화와 교류를 활성화시키고 서로의
친밀도를 높여 유대감형성을 촉진한다.

"에게비에르가르트 뉴타운이 조성된후 이곳의 범죄발생률은 덴마크 평균의
절반에도 못미치고 있다"는 현지주민의 말에서 주민 서로간의 교류활성화에
따른 성과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같은 단지배치설계는 특히 어느 곳보다 밀집도가 높은 반면 주민
상호간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돼 각종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나라의
아파트단지 실정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에게비에르가르트 뉴타운은 또 단지내 개인소유의 단독주택과 공동주택
외에 자치구에서 보조를 받는 싼 임대료의 공공임대주택들이 서로 이웃해
있고 노인들을 위한 주택과 젊은 이들을 위한 주택들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연령별, 계층별로도 다양한 주민들이 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해 놓고
있다.

이에따라 이곳에는 실업자, 독신자, 어린이들이 있는 가족들, 블루칼라층,
이민온 사람 등 덴마크에서 가장 다양한 주민구성양상을 보이면서도 이들
다양한 계층이 가장 선호하나 주거지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이 단지내 모든 건축물에는 예술성과 건축미가 부여돼있다.

다양한 예술장식은 물론 집 한채한채마다 벽면을 다른 색깔로 도색하고
용도별 건물의 배치와 형태도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함으로써
단지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에게비에르가르트 뉴타운의 또다른 특징은 환경보전과 에너지절약을
겨냥한 미래주택건립이 시도됐다는 점이다.

태양열을 에너지로 활용키 위해 건물정면에 대형유리를 설치한 주택들이
선보였다.

또 단지내 장애자들의 위한 주택이나 노인주택의 공용공간은 지붕에
거대한 유리돔을 씌워 태양열을 이용하도록 했다.

재생폐기물로 지붕을 처리하고 진흙과 종이, 나무로 된 무공해 자재로
벽체를 처리한 재생주택, 지붕에는 태양열 집속기를 설치하고 건물의
80%를 대형 유리로 처리한 주택들도 지어져 있다.

뛰어난 건축미로 예술성을 극대화하면서도 환경보전과 에너지절약에
주안점을 둔 미래형주택의 표본을 만들어낸 도시설계.

그것이 이 에게비에르가르트를 유럽의 가장 잘된 주택단지로 만들어 낸
것이다.

< 글 김동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