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건영 <연세대 교수 / 경제학>

정부의 1997년도 예산안에 의하면 내년에 정부지출은 일반회계와
재정융자를 합하여 총 71조 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금년의 63조원에서 13.7% 늘어난 규모이다.

정부의 예측대로 내년 경제성장률을 11.3%로 본다면 재정규모가
GNP보다 더 빨리 증가하기 때문에 국민들은 금년보다 세부담이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실제로 정부도 국세수입이 금년보다 14.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13.7%의 예산 증가율은 지난 3년간의 평균증가율 15.6%에
현저하게 미달하는 것이다.

해마다 예산안이 발표되면 예산의 규모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일어
났다.

특히 내년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팽창예산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선거용 또는 선심용 지출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예산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예산의 규모와 내용의 적절성을 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나라마다 정부의 역할이 다르고 같은 나라에서도 정부의 역할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적정한 정부예산의 규모가 얼마이며 예산의
내용은 어떤 사업으로구성되는 것이 가장 좋은지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거시경제적 상황과 정부가 담당해야할
역할을 종합적으로 보면 예산의 규모와 내용에 대한 평가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예산의 규모와 관련하여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거시경제적
여건이다.

우리 경제는 작년 하반기에 하강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하여 지금은
성장둔화에 따른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록 당면한 경제문제의 핵심이 단기적 경기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고비용 저효율로 집약되는 구조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경기가 하강국면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한층 더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거시경제운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의 하나인 재정규모를
경기순환에 맞추어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1997년 예산규모의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경기순환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에 있을 때 내년 하반기 이후의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미래에 대해서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기순환에 관한 경험적 분석에 의하면 비록 고비용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는 내년까지 해소되기 어렵지만 거시경제의 순환적 흐름은
내년 하반기에 경기호전으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내년 재정이 팽창적으로 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를 좀 더 확대하여 보면 예산의 규모를 물가안정과 무역수지적자와도
연관지을수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예산을 팽창적으로 운용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지출을 줄인다면 국제수지의 적자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년에 비해 내년의 예산증가율을 대폭 축소한 정부의 예산정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시적인 자원배분의 차원에서도 예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우리경제의 어려움이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는 분석이 없다고 하여도 치열한 국제경쟁의 시대에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여러가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정부가 수행하는 사업을 하나씩 보면 어느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렇지만 정부가 쓸수 있는 재원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 사업에
대한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긴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예산총액의 증가를 억제하면서도 교육,
사회간접자본확충, 과학기술진흥, 환경개선, 지역균형개발,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 등의 사업에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분한 것은 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의 예산정책에도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은 물가안정을 위해 공공요금을 동결하는
것이다.

공공요금을 동결할 경우 일시적으로 물가상승률이 다소 낮아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가격은 다 올라가는데 정부의 통제하에 있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특정 산업의 가격만 묶어 둔다면 가격구조가 왜곡되어
국민경제전반의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정부관리하에 있는 소수 품목의 가격을 동결함으로써 일반물가를
안정시키려는 것은 지극히 단기적인 처방이라 할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장기적인 물가상승률을 인하하기 위해 통화의
증가율을 낮추는 일이다.

지난 8월의 통화량은 전년대비 17.4%나 늘어났다.

이는 금년의 예상 실질성장률 6.5%보다 무려 10.9%나 빠른 속도이다.

통화가 실질성장률보다 10.9%나 빠르게 팽창하는 경제에서 장기적으로
물가를 4.5%에 안정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공공요금의 동결이라는 궁색한 정책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처방인 통화증가율
안정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