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초대석] 박영규 <신성해운 사장> .. 첫 외항시장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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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국내 제조업체들이 말레이지아 베트남 등 동남아지역에
합작 또는 단독투자 형태로 현지 생산시스템을 만들어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만큼 앞으로 3국간 물류서비스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외항화물운송업에 대한 면허제가 등록제로 전환된 이후 최근
처음으로 외항시장에 참여한 신성해운 박영규 사장(44)은 기존 31개
외항선사와의 과당경쟁을 피해 동남아권 3국간 서비스에 특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사장은 신성이 지난 84년 해운산업합리화조치이후 12년만에 이뤄진
외항화물운송사업 신규참여의 첫 주인공이 된데대해 "정부와 업계가
규제완화방안의 일환으로 등록제전환을 줄기차게 추진해온 덕분"이라며
겸손해했다.
-외항화물운송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6년전부터 시작한 내항화물운송사업이 사회간접자본시설부족으로
인해 만성적인 체선.체화현상을 빚고 있는데다 육로운송화물의
연안수송전환도 여의치않아 이같은 장벽을 넘기위해 외항참여를 결심하게
됐다"
-해운경기가 침체국면이라 참여시기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시기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영업패턴은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장기화물을 80%이상 취급하고 있어 불황일때도 물량이 안정적인 점이
특징이다.
특히 주된 취급품목인 철강관련 제품은 국가기간산업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물량이어서 비교적 여건이 나은 편이다"
-향후 사업추진계획은.
"현재 40%선인 중국과 일본 등 3국간 중개화물 물량을 70%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으로 한.일,한.중노선을 뛰고 있는 근해수송협의회소속
선사들과는 경쟁을 피할 생각이다.
총선복량이 1만7천t에 달하는 6척의 보유선박을 잘 활용해 이른바
틈새경영으로 전문화하겠다.
내항사업도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박사장은 73년 한국해양대 기관학과를 나와 일본산코라인에 승선
근무하면서 해운업에 발을 들여 놓았고 부일해운 남도해운 부산상선 등을
거쳐 88년 신성해운을 설립했다.
지난 5월31일 제1회 바다의 날엔 해운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건설교통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6일자).
합작 또는 단독투자 형태로 현지 생산시스템을 만들어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만큼 앞으로 3국간 물류서비스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외항화물운송업에 대한 면허제가 등록제로 전환된 이후 최근
처음으로 외항시장에 참여한 신성해운 박영규 사장(44)은 기존 31개
외항선사와의 과당경쟁을 피해 동남아권 3국간 서비스에 특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사장은 신성이 지난 84년 해운산업합리화조치이후 12년만에 이뤄진
외항화물운송사업 신규참여의 첫 주인공이 된데대해 "정부와 업계가
규제완화방안의 일환으로 등록제전환을 줄기차게 추진해온 덕분"이라며
겸손해했다.
-외항화물운송사업에 뛰어든 배경은.
"6년전부터 시작한 내항화물운송사업이 사회간접자본시설부족으로
인해 만성적인 체선.체화현상을 빚고 있는데다 육로운송화물의
연안수송전환도 여의치않아 이같은 장벽을 넘기위해 외항참여를 결심하게
됐다"
-해운경기가 침체국면이라 참여시기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있는데.
"시기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영업패턴은 다른 업체들과는
달리 장기화물을 80%이상 취급하고 있어 불황일때도 물량이 안정적인 점이
특징이다.
특히 주된 취급품목인 철강관련 제품은 국가기간산업에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물량이어서 비교적 여건이 나은 편이다"
-향후 사업추진계획은.
"현재 40%선인 중국과 일본 등 3국간 중개화물 물량을 70%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으로 한.일,한.중노선을 뛰고 있는 근해수송협의회소속
선사들과는 경쟁을 피할 생각이다.
총선복량이 1만7천t에 달하는 6척의 보유선박을 잘 활용해 이른바
틈새경영으로 전문화하겠다.
내항사업도 계속 유지할 방침이다"
박사장은 73년 한국해양대 기관학과를 나와 일본산코라인에 승선
근무하면서 해운업에 발을 들여 놓았고 부일해운 남도해운 부산상선 등을
거쳐 88년 신성해운을 설립했다.
지난 5월31일 제1회 바다의 날엔 해운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건설교통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 김삼규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