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핸콕저 까치간 2권)

올 초가을은 유난히 햇빛이 눈부신 나날들의 연속이다.

이런 투명한 오후에 좁은 정원이나마 그 정원의 느티나무 그늘 밑에서
유장한 역사책을 읽는 기쁨은 참으로 각별하다.

"장안의 화제를 일으켰다"는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은 내가
읽은 역사책 중에서 가장 큰 문화충격을 준 "이단의 책"이다.

그러나 "이단"은 더 멋진 "정통"을 낳을 수도 있다.

재미 또한 대단하다.

그것은 추리적인 소설기법으로 인류문명의 시원을 찾아가는 "초고대
문명 여행 답사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과서적 상식을 뒤엎으면서 사라진 문명의 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하고는 핸콕의 여행기는 나스카에서 시작되어 페루 멕시코 이집트
남극을 답사한다.

저자는 곳곳에서 초고대 문명, 곧 "신의 지문"을 발견한다.

1만년전에 만들어졌다는 스핑크스, 기원전 1만500년경의 천체도에
맞추어 건설되었다는 기자의 피라미드, 기원전 4000년경에 파묻혔다는
아비도스 근교 사막의 12척의 배들, 고대에 그려졌다는 남국대륙의
일부 지도등.

이 증거들을 바탕으로 인류문명의 발원지를 남극대륙-지구의 지각변동에
의해서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는-의 일부로 상정하는 핸콕의 추정의
궁극적 의미와 진실은 무엇일까.

필자는 그 대답을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필연적으로 도래할
인류와 지구의 다섯번째의 대재해에서, 또 그 대재해에 대한 인류의
태도에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신의 지문"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필자는 초저녁의 아련한
보랏빛 천궁속으로 필자의 독자적인 초고대 문명 탐사선을 떠나보낸다.

유영구 < 명지대학교이사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