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도이체텔레콤)여, 게 섯거라"

지난 7월 독일의 만네스만사는 전국 통신망인 디.비콤의 지분 47%를
확보하면서 독일의 제2통신사업자로 부상,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만네스만사는 베바 피악 티슨 RWA 등 덩치큰 기업들을 제치고 독일 국영
통신업자인 DT와 싸울 선봉장을 자처하며 독점적인 지위를 누려온 DT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이로써 독일 통신사업은 그 향방을 좌우할 여러 변수를 남긴채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베바나 티슨 등 그동안 미래전략산업으로 간주되는 통신사업에 눈독을
들여온 거대기업들의 향후 운명도 이같은 불확실성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예를들어 에너지 주력 재벌그룹인 베바는 오래전부터 통신시장 진출을
서두르며 제2통신 사업자로의 등극을 자신해 왔으나 사업자 선정이 마무리
되고 난 요즈음 향후 진로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놓고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베바가 디.비콤의 지분을 다소간 소유하더라도 만네스만측의 지배주주권을
위협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베바로서는 매출규모상 자사의 절반에 불과한 만네스만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일지 모른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 볼때 베바가 만네스만 휘하로 들어가기 보다는
철강그룹인 티슨과 통신사업 진출부문에서 전략적 제휴를 할 것으로 점치는
사람이 많다.

양측 모두 휴대전화망인 E-플러스의 지분 30%씩을 소유하고 있고 따라서
양사의 결합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베바로서는 통신사업에서의 선도적 지위를, 티슨으로서는
출혈경쟁으로 무리가 발생한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꾸려 나갈수 있는
돌파구를 얻게 되는 것이다.

독일 통신시장 재편에의 또다른 복병은 독일 최대 기업인 다임러 벤츠.

벤츠는 최근 인터넷부터 디지털TV까지를 망라하는 멀티미디어 사업으로의
진출을 선언했다.

업계에서는 벤츠가 자사의 서비스 사업부문인 드비스사를 내세워 AT&T와
공동으로 내년 2월로 예정된 제4휴대전화 사업자 선정 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만일 벤츠가 여기서 승리할 경우 독일 통신시장을 송두리째 뒤흔들수 있는
새로운 강자가 등장하는 셈이다.

이와 함께 DT의 태도도 중요한 변수다.

경쟁업체들은 DT가 오는 11월부터 EU(유럽연합)집행위로부터 시행을 허가
받은 기업고객을 상대로 한 리베이트 제공을 실천에 옮길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 통신당국에는 11월까지 통신자유화 절차계획에 맞춰 새로운 전화
서비스 사업자를 선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DT역시 경쟁자들과 회선 이용에 관한 요금및 구체적 시행규칙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시한내 타결은 어려울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DT가 소유하고 있는 1,600만 가정을 잇는 세계 최대의 케이블망의 미래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올초 독일정부의 정책자문기관인 독점 위원회는 통신시장 자유화를
촉진하고 경쟁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기 위해 DT측이 케이블망을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명목상 사유기업인 DT에게 이를
강요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독일정부및 업계의 고민.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민영업자들이 정치권을 개입시켜 집단적으로
압력을 가해 DT측이 결국 케이블망을 내놓도록 하자는 복안을 내놓고 있다.

분명한 것은 독일 통신산업에 일대 지각변동이 진행중이라는 사실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