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의 밀림출장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대성목재공업주식회사 원목부의
최환성씨(29).
그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원목 검사관이다.
남태평양의 솔로몬 군도와 파푸아뉴기니에 산재해 있는 밀림에서 합판용
원목을 선별해내고 이를 배에 실어 국내 합판 생산공장에 보내주는 것이
그의 임무.
그는 좋은 원목을 찾기 위해 1년의 절반정도를 외부인의 발길이 뜸한
밀림속에서 지낸다.
나무에 대한 그의 해박함은 주위에 정평이 나있다.
그는 나무의 맛으로 수종을 구별해낼 정도.나무를 검사할때 으레 한번씩은
씹어서 맛을 본 덕택이다.
컴기오덴드론은 목질에 진이 많아 씁쓸한 맛이 나며 가로가로는 단맛이
독특하다.
특히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며 짠맛을 내는 알비지아의 맛은 인상적이라고
설명한다.
진주 경상대 임산공학과에 다니던 시절 역학에 조예가 깊던 지도교수는
그가 나무와 뗄수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그의 이름 가운데자인 환은 나무가 매일 한개씩 자라나 숲을 이룬다는
뜻을 가졌다는 것.
이 말을 들은 후 그는 나무와의 인연을 피할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대학시절엔 실험용으로 쓸 샘플을 구하기 위해서 지리산을 뒤지고 다녔다.
방학때면 아예 하늘을 지붕삼아 산속에서 자는 날이 많았다.
대성목재 입사면접때 밀림에 들어가 원목을 실어나르는 일을 자청했고
그의 남다른 의지는 회사측에 어렵지 않게 전달됐다.
원목부에 배치되면서 오지를 떠돌며 나무를 검사하는 생활이 시작됐다.
남태평양 밀림속에서 지내면서 그는 새로운 동료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생활하는 원주민들이었다.
맨발로 걸어다니고 나무열매를 빻아 만든 음식을 맨손으로 먹었던 것은
주민들과의 동화를 위한 그의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주민들의 환심을 얻기에 충분했고 그들의 도움이 생활에
큰 힘이 됐다.
이제 검게 그을린 얼굴과 그곳에서 익힌 습성탓에 원주민들과 섞여 있으면
구별조차 어렵게 됐다고 여유있게 얘기하지만 2년전 처음 검목관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파푸아뉴기니에 처음 갔을 때 나체차림의 여자 원주민이 신기해 무의식적
으로 가슴을 만진 것이 화근이 돼 부족들의 공격을 받은 적도 있었단다.
가까스로 위기는 모면했지만 지금도 그일을 생각하면 등에 식은 땀이
흐른다고.
또 원주민들이 권하는 부아라는 나무열매를 먹고 그속에 들어있는 강한
마약성분 때문에 실신했던 경험도 있다.
밀림생활을 통해 무엇보다 어려웠던 점은 외로움을 이기는 일이었다.
생후 9개월된 아들 재형이와 얼굴을 맞댄 시간이 겨우 한달뿐.
적막한 밀림속에서 아들의 사진을 얼굴에 묻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밀림생활이 고난의 연속만은 아니었다.
물반 고기반으로 어족자원이 풍부한 그곳 바다에서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주민들과 함께 구워먹는 일은 현지생활만이 주는 각별한 기쁨이었다.
일희일비했던 밀림속 현장들이 지금은 그를 회사에서 인정하는 나무박사로
만들었다.
그가 프로로 대접받은 것은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 익힌 산지식들과
현장에서 단련한 일에 대한 추진력 때문이다.
그는 최근 마산에서 피아노 강습을 해오던 아내와의 본의 아닌 별거(?)
생활을 청산하고 인천에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오지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받는 300만원의 적지않은 월급 덕택이었다.
나무가 아내보다 더 좋다(?)는 나무예찬론자.그는 오는 11월 나무에 대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도 진학할 예정이다.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우리나라 최고의 목재 전문가가 되기 위한 그의
또 하나의 시도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