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벽을 깨자] (17) 제2부 <8> '칸막이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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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창업을 한 김모(45세)씨는 기계를 도입하기로 하고 시설자금대출을
받으러 창업투자회사라는 금융기관을 찾아갔다.
말그대로 "창업투자회사"라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
했다.
그러나 창투사는 김씨같은 사람에게 시설자금을 대출해 주는 금융기관이
아니었다.
"시설자금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리스회사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리스사
문을 두드렸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담보나 보증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김씨가 가진 담보라고는 매출채권이 전부였다.
그래서 매출채권을 전문으로 할인하는 팩토링회사를 찾아 겨우 기계구입
자금을 마련할수 있었다.
다음은 운영자금이었다.
"상시운영자금대출은 팩토링사에서는 취급을 안하니 은행에 가라"고 해서
이번엔 발길을 은행으로 돌렸다.
김씨같은 창업기업인이 왜 이렇게 "돌림빵"을 당해야 하는가.
이유는 낙후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에 있다.
우리 금융제도는 업무별로 별도의 금융기관을 세워 운용하는 "칸막이 금융"
이다.
은행 증권 보험 종금 신용금고 리스가 다 따로 논다.
기업은 한회사에서 시설자금 운영자금을 다 대출받고 싶어한다.
"원스톱서비스"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막이 금융"에선 이런 토털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이런 업무영역별 금융제도는 명목금리외에 기업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요구한다.
금융기관별로 실무자와 책임자 얼굴익히랴,접대하랴 드는 돈도 한두푼이
아니다.
또 금융기관별로 제출하라는 서류도 달라 이만저만한 비용이 드는게
아니다.
금융계를 이처럼 업무별로 칸막이를 쳐 보호해 주니 금융기관쪽에선 또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은행들은 기업에 대한 신용상태를 제대로 알려고 들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중소기업에는 무조건 "금리바가지"를 씌운다.
신용상태가 우수한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시된다.
90년대 들어 꾸준히 추진된 금리자유화는 은행들이 금리바가지를 마음대로
씌울수 있게 했다.
그결과 예금이자보다 대출이자가 턱없이 높아졌다.
지난해 25개 일반은행의 예대마진은 3.2%였다.
94년의 2.3%보다 훨씬 높아졌다.
예금이자보다 대출이자가 3.2%나 높으니 이 차액은 은행이 다 챙긴 것이다.
"중소기업이 돈벌어 은행을 먹여살렸다"는 얘기가 나올만도 하다.
금융권별 업무영역나누기만이 아니다.
기업의 보이지 않는 비용을 올리는 것은 통화당국의 구태의연한 통화관리
방식도 마찬가지다.
통화당국이 직접통화관리를 하다보니 갑자기 여신통제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은행은 대출을 대폭 줄인다.
여기서 골탕먹는건 물론 기업이다.
"은행지점장이 1주일뒤에 대출을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통화관리가 강화
됐다며 대출시기를 미루었다. 할수없이 사채를 빌려 일단 자금을 막고 한참
뒤에야 대출을 받을수 있었다"(A기업 최모사장)
필요없는 사채이자를 문 셈이다.
이런 예측불가능한 은행대출 때문에 기업은 너나 할것 없이 당장 필요
없더라도 돈을 더 빌려 놓고 본다.
언제 돈줄이 말라 부도위기에 몰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금가수요도 이래서 생긴다.
가수요는 전체적으로 금리수준을 높이고 기업이 쓸데없이 이자를 물게
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숨은 금리"는 금융제도개편만으로 해결책을 찾을수
있다.
"칸막이 금융"을 완화하면 된다.
"칸막이금융"은 지난 1929년 대공황을 경험한 미국에서 생겼다.
금융업무간에 이해가 서로 상충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글래스 스티걸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식 금융을 도입하면서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최근 금융국제화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경직적인 구분은 점차
없어지고 있다.
금융이 발달한 유럽은 아예 이런 벽이 없다.
은행이 증권사이고 증권사가 곧 종금사이며 종금사가 또 은행이다.
한 은행에서 모든 금융업무를 다 처리한다.
고객은 한자리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다 받을수 있다.
한은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재정증권등을 사고팔아 자금의 수위를
조절하는 통화관리의 선진화도 과제다.
한은도 내부자료에서 "2년만기 통안증권을 발행하고 RP(환매조건부 채권)
조작대상기관을 확대하는등 공개시장조작제도의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물론 금융제도개편이 고금리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고금리의 근본원인은 기업의 과도한 자금수요와 차입경영풍토에도 있다"
(김동원 수원대교수)는 진단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낙후된 금융제도가 기업들의 대차대조표에 나오지 않은
"숨은 고금리"의 주범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금리해소를 명목금리인하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정리=안상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
받으러 창업투자회사라는 금융기관을 찾아갔다.
말그대로 "창업투자회사"라 도움을 받을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작용
했다.
그러나 창투사는 김씨같은 사람에게 시설자금을 대출해 주는 금융기관이
아니었다.
"시설자금대출을 전문으로 하는 리스회사에 가보라"는 말을 듣고 리스사
문을 두드렸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담보나 보증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김씨가 가진 담보라고는 매출채권이 전부였다.
그래서 매출채권을 전문으로 할인하는 팩토링회사를 찾아 겨우 기계구입
자금을 마련할수 있었다.
다음은 운영자금이었다.
"상시운영자금대출은 팩토링사에서는 취급을 안하니 은행에 가라"고 해서
이번엔 발길을 은행으로 돌렸다.
김씨같은 창업기업인이 왜 이렇게 "돌림빵"을 당해야 하는가.
이유는 낙후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에 있다.
우리 금융제도는 업무별로 별도의 금융기관을 세워 운용하는 "칸막이 금융"
이다.
은행 증권 보험 종금 신용금고 리스가 다 따로 논다.
기업은 한회사에서 시설자금 운영자금을 다 대출받고 싶어한다.
"원스톱서비스"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칸막이 금융"에선 이런 토털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이런 업무영역별 금융제도는 명목금리외에 기업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요구한다.
금융기관별로 실무자와 책임자 얼굴익히랴,접대하랴 드는 돈도 한두푼이
아니다.
또 금융기관별로 제출하라는 서류도 달라 이만저만한 비용이 드는게
아니다.
금융계를 이처럼 업무별로 칸막이를 쳐 보호해 주니 금융기관쪽에선 또
경영능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난다.
은행들은 기업에 대한 신용상태를 제대로 알려고 들지도 않고 알지도
못한다.
중소기업에는 무조건 "금리바가지"를 씌운다.
신용상태가 우수한 중소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시된다.
90년대 들어 꾸준히 추진된 금리자유화는 은행들이 금리바가지를 마음대로
씌울수 있게 했다.
그결과 예금이자보다 대출이자가 턱없이 높아졌다.
지난해 25개 일반은행의 예대마진은 3.2%였다.
94년의 2.3%보다 훨씬 높아졌다.
예금이자보다 대출이자가 3.2%나 높으니 이 차액은 은행이 다 챙긴 것이다.
"중소기업이 돈벌어 은행을 먹여살렸다"는 얘기가 나올만도 하다.
금융권별 업무영역나누기만이 아니다.
기업의 보이지 않는 비용을 올리는 것은 통화당국의 구태의연한 통화관리
방식도 마찬가지다.
통화당국이 직접통화관리를 하다보니 갑자기 여신통제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 은행은 대출을 대폭 줄인다.
여기서 골탕먹는건 물론 기업이다.
"은행지점장이 1주일뒤에 대출을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통화관리가 강화
됐다며 대출시기를 미루었다. 할수없이 사채를 빌려 일단 자금을 막고 한참
뒤에야 대출을 받을수 있었다"(A기업 최모사장)
필요없는 사채이자를 문 셈이다.
이런 예측불가능한 은행대출 때문에 기업은 너나 할것 없이 당장 필요
없더라도 돈을 더 빌려 놓고 본다.
언제 돈줄이 말라 부도위기에 몰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금가수요도 이래서 생긴다.
가수요는 전체적으로 금리수준을 높이고 기업이 쓸데없이 이자를 물게
한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숨은 금리"는 금융제도개편만으로 해결책을 찾을수
있다.
"칸막이 금융"을 완화하면 된다.
"칸막이금융"은 지난 1929년 대공황을 경험한 미국에서 생겼다.
금융업무간에 이해가 서로 상충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글래스 스티걸법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미국식 금융을 도입하면서 이런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최근 금융국제화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경직적인 구분은 점차
없어지고 있다.
금융이 발달한 유럽은 아예 이런 벽이 없다.
은행이 증권사이고 증권사가 곧 종금사이며 종금사가 또 은행이다.
한 은행에서 모든 금융업무를 다 처리한다.
고객은 한자리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다 받을수 있다.
한은이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말고 재정증권등을 사고팔아 자금의 수위를
조절하는 통화관리의 선진화도 과제다.
한은도 내부자료에서 "2년만기 통안증권을 발행하고 RP(환매조건부 채권)
조작대상기관을 확대하는등 공개시장조작제도의 정비를 추진해야 한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물론 금융제도개편이 고금리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고금리의 근본원인은 기업의 과도한 자금수요와 차입경영풍토에도 있다"
(김동원 수원대교수)는 진단에 많은 사람이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낙후된 금융제도가 기업들의 대차대조표에 나오지 않은
"숨은 고금리"의 주범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금리해소를 명목금리인하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정리=안상욱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