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비행기를 탈때면 으레 델타항공을 찾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한 이륙시간,뛰어난 서비스..그러나 이것은 델타항공이 원가절감을
위해 직원들을 자르기 전의 일이다.

이 회사는 지난 80년대말 전체 인력의 6분의 1에 달하는 1만2천여명을
감원하면서 오히려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직원 감축으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자 고객들이 등을 돌린 것.

결국 델타항공은 업종 특성을 무시한 감원으로 오히려 화를 자초한 감량
경영의 실패 사례로 기록돼 있다.

불황의 한복판에 서 있는 국내기업들이 너도나도 명예퇴직등 감량경영에
돌입해 있다.

업종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한국기업들은 유행병처럼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델타항공 케이스는 국내 기업들이 눈여겨 볼만한
타산지석이란 지적이 많다.

업종 특성을 감안하지 않거나 장기적 비전및 전략없이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감량경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몇몇 기업들의 지나친 감량경영은 적지않은 문제점과 과제를
노출시키고 있는게 사실이다.

우선 무차별적인 감원이 대표적이다.

근무경력이나 나이제한 없이 전직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일부기업의
명예퇴직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갈 사람은 안나가고 남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떠나는" 부작용은 기본이다.

더 큰 문제는 업무 노하우의 단절로 인한 손실이다.

특히 국내기업의 명예퇴직 대상이 주로 중간관리층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간관리자는 현장 직원과 경영진을 연결하는 고리역할을 한다. 이들은
대개 육감 노하우 경험등 자로 잴수 없는 "무형의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런 중간매개자들이 회사를 떠난다면 그만큼의 보이지 않는 손해가 초래될
건 뻔하다"(정일재 LG경제연구원 이사).

지난 90년 이후 감원을 단행한 미국기업들중 영업이익이 향상된 경우는
절반도 안되고 생산성이 개선된 경우는 더더욱 적었다는 미경영자협회(AMA)
의 조사결과는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기업들의 감량경영 메뉴중 하나인 사업구조 조정에서도 부작용의 소지는
많다.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유망사업에 집중한다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잉여인력에 대한 처리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

정리해고등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은 관리직 사원들의
영업직 전환등 인력 전진배치를 해소책으로 구사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수년간 펜대만 굴리던 사람을 영업현장에 내몰았을 때 과연 얼마
만큼의 성과를 거둘지가 의문인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 C사의 경우 전진배치된 인력중 28%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결국 잉여인력에 대한 대책없이 추진된 사업구조조정은 무리한 감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린고비식 경비절감도 손익계산을 분명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각 기업들은 원감절감 목표 달성을 위해 마른 수건도 쥐어짜듯 기발한
경비절감 아이디어들을 추진중이다.

여기서 문제는 너무 지나치게 사원들을 쥐어짜다보면 사기저하라는 반작용
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예컨대 경비절감을 위해 영업사원들에게조차 "전화비를 줄이라"는 식의
탁상형 지침이 떨어지고 있는 것 등이 대표적 사례다.

물론 국내기업들의 감량경영이 모두 잘못됐다는 말은 아니다.

큰 방향은 맞고 현실적으로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또 일부 회사는 직원들의 재교육 투자를 오히려 확대해 불황때 내일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LG그룹은 감원 임원상여금 반납등 인위적 대책보다는 경영합리화에 더욱
주력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럼에도 진지한 고민없이 당장 손쉬운 방법에만 매달리는 일부 기업의
감량전술은 절대 경계해야 한다는건 분명하다.

불황타개책에서도 장기적 비전과 전략이 필수조건이란 얘기다.

이런 점에서 IBM 필립스 도요타등 불황극복에 성공한 선진기업들의 공통
전략은 주목할만 하다.

"불황을 딛고 일어선 기업들의 경우 최고경영자의 강력한 리더십, 소프트한
분야로 사업구조전환, 전략적 제휴를 통한 리스크 최소화등이 전략의 기본
골격이었다"(삼성경제연구소의 "선진기업의 불황극복 사례" 보고서중)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