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나는 서울에서 빈 분리파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티켓을 예약했다.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라는 제목의 이 전시는 회화 작품뿐만 아니라 기하학적 포스터, 공예품까지 아우르며 빈 분리파의 예술적 유산을 총체적으로 보여줬다.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나는 의문이 생겼다. “이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고?” 빈 분리파의 작품이 왜 미술관이 아니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일까?우리나라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명확히 구분해 박물관은 역사적 유물과 자료를 다루고, 미술관은 회화·조각 등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 구분은 1991년 제정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서 비롯됐다. 이 법에 따르면 박물관은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의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미술관은 ‘서화·조각·공예·건축·사진 등 미술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교육하는 시설’이다. 이런 법적 정의와 구분은 박물관과 미술관을 동등한 층위의, 본질적으로 다른 기관으로 여기도록 만들었고 더 나아가 조선 후기까지의 미술품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이후의 미술품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관리하는 기이한 관행을 낳았다.본래 ‘뮤지엄(Museum)’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술과 과학의 수호신 ‘뮤즈(Muse)’에서 유래했다. 이후 각국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이 29조2000억원으로 4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이다. 자녀들이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앞섰으면 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사교육을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실력을 높일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어서다. 획일적인 공교육으론 부족해 시장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구매하겠다는 학생과 학부모를 말릴 방법도 마땅치 않다.문제는 사교육 시장의 표적 연령대가 과도할 정도로 어려졌다는 데 있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선 ‘4세 고시’ ‘7세 고시’ ‘초등 의대반’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인다. 세 살 이전에 영어유치원 입학을 준비하고, 초등학교에선 의대를 겨냥한 수학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찍 배운 아이가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선행불패’가 학원들이 내세우는 공통된 논리다.하지만 조기 선행교육이 사교육의 장점인 ‘효율’을 항상 보장하지 않는다. 7세 때 한두 달이면 뗄 구구단을 3세 때 가르치면 똑똑한 아이라도 1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학습에 필요한 인지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다. 학부모들은 배운 게 있으니 조금이라도 나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마거릿 버치날 미국 버지니아대 교수 연구팀은 조기교육을 받은 만 3~5세 유아 4667명을 추적 분석한 연구를 지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만 9세까지는 아이들의 학업 성취도가 올라가지만, 그 이후엔 조기교육의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이 골자다. 6학년(만 11세)이 되자 조기교육을 받은 모집단에서 수학과 쓰기 능력이 뚝 떨어지거나, 반사회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그제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강행 처리한 상법 개정안에 대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직을 걸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각종 소송을 부추겨 기업 경영에 큰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큰 문제투성이 법안을 두고 금융당국 수장이 돌연 입장을 바꿔 공개적으로 정부에 맞선 것이다.우선 이 원장의 발언이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 ‘월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법 개정안의 소관 부처는 금감원이 아니라 법무부다. ‘금융위원회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는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감독 업무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금융감독원을 설립한다’(제24조)고 금감원의 설립 목적과 권한을 분명하게 못 박고 있다. 흥정하듯 ‘직을 건다’는 표현을 쓴 것도 문제다. 어차피 석 달 뒤면 임기를 마치는 처지에 기관장직은 ‘버리는 카드’에 불과하지 않나.정부 내에서 주무부처와 다른 목소리를 내놓은 장면도 석연찮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정상적 상태였어도 이렇게 무도한 발언을 했을지 의문이다. 이 원장은 ‘개인적 소신’이라고 강변하겠지만, 당장 과거 자신의 발언부터 부정하는 행위다. 이 원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법을 개정해 100만 개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간섭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검사 출신 이 원장의 각종 월권에 대한 지적은 임기 내내 끊이지 않았다. 민간기업인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임기를 왈가왈부하고, 대출 정책에 대한 모순된 발언으로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기업의 경영 활동을 심사해 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