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ing Women] 김영애 <옥당식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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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때부터 요리하기를 좋아했어요.
남편 직업때문에 여러나라를 다녔고 한달의 절반은 손님접대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음식만드는 일에 익숙해졌죠.
외국인들을 대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우리 고유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 것이라야 그들의 관심을 끌수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옥당식품 김영애 사장(54)은 49세때 자신의 일을 시작한 사업가다.
현재 경기도 화성의 공장에서 김치 육포 한과류 등 전통식품을 만들고
있으며 올해안에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드는 제2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그의 공장에서 만드는 식품들은 현재 호텔 백화점 등에 판매되고 있다.
"남편의 퇴직후에 제 일을 갖기로 남편과 약속했어요.
처음엔 케익점문점을 생각했죠.
일본 호주의 요리전문학교에서 각종 서양음식을 배워 자신이 있었거든요.
시드니에서는 유명제과점을 찾아가 2년간 궂은일을 해가며 비결을
배우기도 했구요.
그런데 외국에서 일본 "기무치"가 판치는 것을 보니까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는 남편 (정경훈 전 모리셔스대사)이 30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친
직후인 91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 "새아씨당"이라는
폐백음식전문점을 냈다.
배추 열무 부추김치 등 10여가지의 김치와 폐백음식 육포 인삼정과
한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고급음식으로 성가를 올렸다.
이에따라 95년에는 (주)옥당식품으로 상호를 바꾸고 지점 (청주)도
내며 사업을 확장했다.
95년 매출은 3억7,000만원.
이 사업을 시작한 동기가 "기무치" 때문이었던 만큼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목표다.
차차 동남아지역으로 확장할 예정.
"결혼하면서 처음 한 일이 옛날 궁궐의 상궁이셨던 분을 찾아가 우리
궁중요리법을 배운 것이에요.
외교관 부인의 가장 큰 역할이 손님접대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나중에 곰탕 매운탕 솜씨를 다른나라 외교관들에게 칭찬받으면서 덕을
톡톡히 봤죠"
솜씨가 소문나 88~89년에는 외교연구원에서 외교관 부인들에게 강의도
했다.
"저는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내조기간을 마치고 외조를 받아가며 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취미를 직업으로 연결시켰지만 그렇다고 직업의식이 약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크게 확장시키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식만은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재래발효법 토종재료사용 등의 원칙은 꼭 지키겠다고 말한다.
두 딸중 큰딸이 일을 돕고 있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일자).
남편 직업때문에 여러나라를 다녔고 한달의 절반은 손님접대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음식만드는 일에 익숙해졌죠.
외국인들을 대하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은 우리 고유의 특성이 강하게
드러난 것이라야 그들의 관심을 끌수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옥당식품 김영애 사장(54)은 49세때 자신의 일을 시작한 사업가다.
현재 경기도 화성의 공장에서 김치 육포 한과류 등 전통식품을 만들고
있으며 올해안에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드는 제2공장을 지을 예정이다.
그의 공장에서 만드는 식품들은 현재 호텔 백화점 등에 판매되고 있다.
"남편의 퇴직후에 제 일을 갖기로 남편과 약속했어요.
처음엔 케익점문점을 생각했죠.
일본 호주의 요리전문학교에서 각종 서양음식을 배워 자신이 있었거든요.
시드니에서는 유명제과점을 찾아가 2년간 궂은일을 해가며 비결을
배우기도 했구요.
그런데 외국에서 일본 "기무치"가 판치는 것을 보니까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는 남편 (정경훈 전 모리셔스대사)이 30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마친
직후인 91년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맞은편에 "새아씨당"이라는
폐백음식전문점을 냈다.
배추 열무 부추김치 등 10여가지의 김치와 폐백음식 육포 인삼정과
한과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고급음식으로 성가를 올렸다.
이에따라 95년에는 (주)옥당식품으로 상호를 바꾸고 지점 (청주)도
내며 사업을 확장했다.
95년 매출은 3억7,000만원.
이 사업을 시작한 동기가 "기무치" 때문이었던 만큼 일본에 김치를
수출하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목표다.
차차 동남아지역으로 확장할 예정.
"결혼하면서 처음 한 일이 옛날 궁궐의 상궁이셨던 분을 찾아가 우리
궁중요리법을 배운 것이에요.
외교관 부인의 가장 큰 역할이 손님접대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나중에 곰탕 매운탕 솜씨를 다른나라 외교관들에게 칭찬받으면서 덕을
톡톡히 봤죠"
솜씨가 소문나 88~89년에는 외교연구원에서 외교관 부인들에게 강의도
했다.
"저는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오랜 내조기간을 마치고 외조를 받아가며 제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취미를 직업으로 연결시켰지만 그렇다고 직업의식이 약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크게 확장시키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겠다는
의식만은 누구보다도 강하다고.
재래발효법 토종재료사용 등의 원칙은 꼭 지키겠다고 말한다.
두 딸중 큰딸이 일을 돕고 있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