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이 발달해 지금 우리는 임부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의
성쯤은 간단히 판별해 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첩을 두어서라도 후사를 두는 것이
사회의 통념이었던 옛 사람들의 "아들일까, 딸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그야말로 절박한 문제였다.

조선조 영조때 사람 유중임이 홍만손 (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를
증보해 펴낸 "증보 산림경제"에는 바로 "태아성감별법"이 들어있어
선인들의 이 문제에 대한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느낄수 있게 해 준다.

"배위를 쓸어 보아서 술잔을 엎어놓은 것과 같은 것은 아들이고,
팔꿈치나 목처럼 울퉁불퉁 일어나는 것은 딸이다"

"왼쪽 유방에 핵이 있으면 아들이고, 오른쪽 유방에 핵이 있으면 딸이다"

"왼쪽 맥이 빠르거나 크게 뛰면 아들이고, 오른쪽 맥이 빠르게 뛰면
딸이다"

"태아성감별법" 치고는 너무 허무맹랑한 것 같아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더구나 이 책에는 현대의술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을 딸로
변하게 만드는 법"도 기록돼 있다.

복숭아나무 도끼자루나 수탉의 꼬리깃을 임부가 깔고 자면된다는 등
좀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오랫동안 가부장제의 영향아래 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성 여성을
불문하고 가계전승의식이나 혈연의식이 어느나라사람보다 강하다.

그래서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을 낳느냐, 못낳느냐는 것은 가족내에서
여성의 위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됐고 아들을 낳기위해 계속 출산을
하는 여성이 많았다.

요즘도 법을 어겨가며 태아 성감별을 한후 선별출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도 아직 가계전승을 위한 아들선호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돈을 받고 태아 성감별을 해준 산부인과의사와 조산사 등
18명을 처음 구속했다.

그중에는 낙태수술을 해준 의사, 미혼모의 아이를 돈을 받고
불임여성에게 넘겨준 악덕의사도 끼어 있다.

성감별로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어간 여아가 94년 한해도 2만9,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검찰의 추정에는 아연해질 수 밖에 없다.

의술이 악덕의사들에 의해 이처럼 비인도적으로 악용된다면 미신같이
허무맹랑한 우리 선인들의 "태아 성감별법"이 훨씬 더 인도적이라는
생각마져 든다.

의사의 직업의식과 윤리적의무를 규정한 "히포크라테스선서"에는
분명히 생명을 존중하는 다음과 같은 귀절도 있다.

"나는 어느 여인에게도 낙태용 약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