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환경 불감증 .. 박용근 <대우회장비서실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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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민족 대이동기로 정착한 추석 연휴를 전후하여 모처럼의 맑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삼 상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반면 시화호가 오염되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듣기에는 생소한
"오존 경보"빈도 역시 잦다.
왜 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경문제를 일과성으로 바라보는 불감증 때문이리라.
물질적 여건이 어려웠던 우리가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맞는 감격은 분명
남다른 것이다.
특히 전국민이 합힘 협력해 일군 성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우리의 생활 환경과 "삶의 질"을 담보로한
"성장지상주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현재 우리 경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을
구가하지만 그동안 환경은 중증을 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경문제의 해결에 왕도(왕도)는 없다.
환경문제 해결은 정부-기업-국민의 공간대 형성을 바탕으로 꾸준한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무척 엄하셨던 교장 선생님은 "과유불급"에 대해
말씀하시며 근검절약을 강조하셨다.
또 필자는 일본 근무시에 일본 주부들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보며
당시 별 생각없이 지나친 적이 있다.
최근에 와서야 환경문제 해결은 무엇보다 건강한 의식과 좋은 습관
그리고 각자의 자발적인 노력에서 비롯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환경오염은 이제 국경을 넘어"지구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인류
생존의 가장 큰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환경문제에 대한 기술적 대안을 갖지 못한다면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한 자치단체는 청계천을 같은 오염의 상징지역을 첨단 정수기술을
적용 시민공원으로 조성함으로써 신개념의 관관자원으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환경문데 역시 발상의 전화과 기술적 뒷받침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사례일 것이다.
우리 역시 일관성과 효율성,그리고 남다른 창의성을 바탕으로 환경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환경문제는 "오늘"의 문제이자"생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4일자).
민족 대이동기로 정착한 추석 연휴를 전후하여 모처럼의 맑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삼 상쾌한 기분을 맛보았다.
반면 시화호가 오염되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듣기에는 생소한
"오존 경보"빈도 역시 잦다.
왜 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경문제를 일과성으로 바라보는 불감증 때문이리라.
물질적 여건이 어려웠던 우리가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맞는 감격은 분명
남다른 것이다.
특히 전국민이 합힘 협력해 일군 성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우리의 생활 환경과 "삶의 질"을 담보로한
"성장지상주의"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현재 우리 경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을
구가하지만 그동안 환경은 중증을 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환경문제의 해결에 왕도(왕도)는 없다.
환경문제 해결은 정부-기업-국민의 공간대 형성을 바탕으로 꾸준한
실천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무척 엄하셨던 교장 선생님은 "과유불급"에 대해
말씀하시며 근검절약을 강조하셨다.
또 필자는 일본 근무시에 일본 주부들의 "쓰레기 분리수거"를 보며
당시 별 생각없이 지나친 적이 있다.
최근에 와서야 환경문제 해결은 무엇보다 건강한 의식과 좋은 습관
그리고 각자의 자발적인 노력에서 비롯됨을 새삼 깨닫게 된다.
환경오염은 이제 국경을 넘어"지구촌 공동체"를 파괴하는 인류
생존의 가장 큰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만약 우리가 환경문제에 대한 기술적 대안을 갖지 못한다면 미래는
불투명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한 자치단체는 청계천을 같은 오염의 상징지역을 첨단 정수기술을
적용 시민공원으로 조성함으로써 신개념의 관관자원으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환경문데 역시 발상의 전화과 기술적 뒷받침이 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사례일 것이다.
우리 역시 일관성과 효율성,그리고 남다른 창의성을 바탕으로 환경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환경문제는 "오늘"의 문제이자"생존"의 문제로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