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미은행의 대주주인 BOA(아메리카은행)가 이 은행주식 10%를
삼성에 넘길 때의 일이다.

"은행의 소유구조와 관계된 일이어서 경영진은 어떻게든 그 사실을 매각
이전에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양반들(BOA지칭)은 매각후에 그냥 "팔았다"고만 알려왔습니다"
(한미은행 엄한섭상무) 한미은행 사람들은 그때 느꼈던 섭섭함을 기회있을
때마다 얘기하곤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그럴 공산이 또 있다는 것 BOA는 FRB
(미연준리)의 권고에 따라 한미은행 지분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BOA가 지분을 모두 팔아버리면 한미은행은 더이상 합작은행이 아니다.

일반 시중은행과 다를바 없어진다.

이 경우 한미은행도 일반시중은행처럼 "동일인 은행주식보유 4%제한"룰
"비상임 이사회제도"가 적용될 것인가.

새로 도입되는 비상임 이사회제안은 이 부분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지
못한다.

하나.보람은행 등에는 10대그룹의 경영참여를 인정하고 있지만 한미은행의
경우 "그때 가 봐서" 판단하겠다는게 정부 생각이다.

금융계에서는 하나.보람은행 등에 한해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시험적
으로" 허용한만큼 한미은행도 이 예를 따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지분 확보를 둘러싼 대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이 쉽게 예상되는 것도
그래서다.

당장 한미은행은 삼성과 대우그룹의 각축장이 될 터이다.

지난 6월말 15.79%의 한미은행 주식을 보유하던 삼성은 한달사이 지분을
16.66%로 끌어올려 대우를 제치고 국내 최대주주로 부상하기도 했다.

하나 보람도 대기업의 눈독을 집중적으로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은행 경영권을 인정받은 기존 대주주들은 인사 등 경영현안에서 더욱
강력한 파워를 행사할 것이란 점도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같은 맥락에서 대기업들은 일반시중은행에 대해서도 갖은 수단을 동원해
지분늘리기와 영향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혹시 정부정책이 산업자본의 은행지배를 전면 허용해주는 방향으로
"진일보"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좀 다른 얘기지만 하나 보람은행 등에 대해 비상임 이사회제의 적용을
배제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합전법에 따라 설립된 은행이라고 달리 취급할 게 뭐있느냐는 얘기다.

재일교포와 실향민이 경영권을 행사하는 신한은행과 동화은행의 경영
기득권은 인정해 주면서 강원 등 지방은행들은 왜 끼워넣지 않았느냐는
항변이 나온다.

총수신 32조원의 국민은행이 소형은행으로 분류되는 현상은 상황은 이와
다르지 않다.

납입자본금 5,000억원을 기준으로 전체 이사수를 산정하다보니 국민은행의
이사는 현재 14명에서 7명으로 대폭 줄어드는 웃지못할 일도 벌어지게 됐다.

물론 뒤늦게 이에 대해 재검토를 한다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원칙은 불분명하고 예외적인 잣대만 이것저것 많지 않은지 금융당국이
되새겨볼 부분이다.

< 이성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