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예술의 전당에서는 "피닌파리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미래까지"
라는 부제를 달고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자동차 전시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전시된 자동차들은 그가 디자인한 초기의 작품부터 미래 지구환경을
생각하는 자동차까지 그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피닌파리나 그룹은 현재 2,000명이상의 종업원을 거느리면서 과학 공학
그리고 미학을 집결시킨 디자인의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자동차 디자인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전시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전시장 1층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습작품과
함께 입구 바로 앞에 전시되었던 조그마하면서도 단아한 빨간색 스포츠
쿠페를 기억할 것이다.

이 차가 바로 "움직이는 조각품"이라고 불리는 피닌파리나의 초기 대표적
작품인 치시탈리아이다.

그 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스포츠 레이싱카를 사랑하다 자신의 꿈을 다 이루지못한 어느 레이싱
마니아의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치시탈리아는 1945년 피에로 듀시오라는 스포츠레이스광에 의해 제작에
착수됐다.

그는 이탈리아의 프로축구 선수이었는데 선수생활을 그만두면서 뛰어난
사업수완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는 자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치시탈리아라는 이탈리아 스포츠산업협회
(Consorzio Industrials Sportivo Italia)를 구성했다.

또 스포츠 대중화를 위하여 그 이름을 따서 자신의 꿈인 스포츠카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는 피아트 그룹의 엔지니어인 지아코사와 함께 피아트 자동차의 부품과
엔진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자동차에 맞게 설계했다.

1,089cc 4실린더의 작은 엔진에 파워를 증강시켜 55마력의 힘을 낼 수 있게
했고, 기어는 4단 수동기어를 사용했다.

뿐만아니다.

기어는 프리.셀렉터라는 독특한 기어변속장치로 변경시켜 운전자가 급하게
코너를 돌 때 발로 기어를 변속,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떼지않아도 되도록
했다.

보디 설계는 피아트의 우주항공 공학자인 지오바니라는 엔지니어가
담당했다.

스타일링은 피닌파리나가 맡았으며 에어로다이믹을 총동원하여 작은
엔진에도 시속 160km를 내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만들었다.

그러나 듀시오의 야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레이싱카를 만들겠다는 집념은 당시 전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자동차박사 포르세와 접촉하게 됐다.

그는 최고의 스포츠카를 위해 당시 최고의 엔지니어였던 포르세박사를
보석금 100만프랑을 지불하고 데리고 왔다.

그러나 시대를 초월한 자동차 제작에의 무리한 꿈은 듀시오를 결국
파산으로 이끌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후 치시탈리아는 1952년까지 170여대가 생산이 됐고 1951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세계 8대 명차를 전시하는 자리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조각품"이라는 이름아래 세상사람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김상권 < 현대자동차 승용제품개발 2연구소장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