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영 < 고려대 교수/경영학 >

정부의 비능률은 늘 심각한 정치및 경제문제가 되어 왔다.

최근 우리 정부는 "10% 경쟁력 높이기"를 주창하며 민간업계를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 부문의 경쟁력 향상이나 생산성 제고는 이 논의에서
빠져있어 의외라는 느낌이 든다.

"비용을 10% 줄이거나 생산성을 10% 올리자"는 것이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정부 자신은 국가경쟁력에서 오히려 크게 낙후되어 있다는 비난을
받고도 있다.

정부는 그동안 공공부문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부처의 통폐합,
인력및 조직의 축소, 공공업무의 민간 이양, 공기업 민영화등을 추진해
왔으나 부처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등으로 실적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이런 상황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 연구소(IMD)의 정부부문 경쟁력 조사에서
우리정부가 46개국중 정부지출이 많은 정도가 13위, 정부효율성및 투명성이
39위에 머문다는 사실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정부부문의 행정 효율화와 생산성
제고가 강력하게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부문의 생산성이나 효율성은 현재와 같은 예산회계제도하에서는
결코 평가할수도 없고 적절하게 공시될 수도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가 예산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는지를 정부자신은 물론 국민 그 누구도
적절하게 평가할 방법이 없다면 정부의 효율성 문제는 지극히 모호한 과제로
변질되고 만다.

평가할 잣대가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정부부문의 효율성을 말해봤자
공염불에 그칠 것이라는 것은 정부 효율성 제고가 하나의 슬로건으로
그쳐왔던 지금까지의 과정이 증명하고 있는 바 그대로다.

정부의 생산성 제고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예산 운용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공공회계 책임을 평가하고 경제적 사회적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정부회계 제도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개혁을 통해 예산의 편성, 심의 집행 그리고 결산 과정이 과학적으로
통제되고 이 과정을 거쳐 예산 운용 실태의 완전한 공시와 국민적 감시가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우리정부의 예산 편성과정은 과다한 예산 요구, 재원조달 방안없는
신규투자, 변칙적 예산편성 등 무수한 비합리성을 노정시켜왔다.

또 집행과정에서는 업자와의 유착, 고가구매와 저질납품, 연도말의
불요불급한 물품구매 등 각종 부조리가 빈발해왔다.

이같은 정부의 비효율성은 정부회계제도의 복잡성은 물론 예산회계법
물품관리법 정부 채권관리법 등 근거 법률이 각기 독립적으로 제정되어
있어 전체를 연결하는 통일성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같은 회계 방식은 회계의 원칙을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행정 사무관리의
지침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써 초과 지출을 억제하려는 수탁관리 책임에
촛점을 맞추고 있는 낡은 방식이라고 할 것이다.

현행 정부회계의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정부회계는 현금주의에 기초하여 현금의 흐름과 통제에 초점을
두고 있어 실제 발생한 경제적 사건이나 거래로 인한 수익및 비용활동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기간수지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현금주의하에서는 채무부담 행위가 있더라도 현금의 지출이 없다면 수지
결산상 건전한 재무상태로 드러나게 되고 비현금 지출 항목이 지출예산에
포함되지 않아 자금수지상 흑자지만 실제로는 자본 잠식이 발생할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둘째, 자산과 부채가 일부만 각각의 장부에 기재되고 현금수지에 기초해
작성된 대장은 일종의 비망록에 불과한 것이 되어 재산상태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또 회계적 의미의 자산과 부채개념은 정립되지 않고 채권채무와 법적
소유권만 규정되는 불합리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들어 72조원의 예산규모인 우리 정부의 자산 총액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자산규모가 수십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 조차 자산총액은 물론 그 내역까지
도 소상히 파악되는 터에 정부의 자산이 파악조차 되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우리정부의 회계제도는 단식부기에 의해 작성되는 수지계산서에
불과하여 오류나 부정을 찾아내기가 대단히 어려운 실정이다.

각종 장부의 기록은 하등의 유기적 관계를 갖고 있지 않아 오류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원시적 기록을 대조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막대한 정부재정에
대한 회계기록을 신뢰하기 어렵다.

회계방식이 복식부기로 대체될 경우 장부기록들이 총계정 원장을 중심으로
서로 계수적 연관성을 갖는 대차대조표와 수지계산서로 통합되어 부정오류를
방지하는 등 자검기능을 확보할수 있을 것이다.

이같은 단점들을 보완하고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평가기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발생주의와 복식부기에 의한 정부회계 기준의 제정이 시급하다.

또 이를 통해서만 능률적인 재정운영을 도모하고 정부의 효율을 검증평가
하는 정치의 과정도 제기능을 발휘할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행 정부 회계는 설립목적이 서로 다른 각종 법률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법률을 통폐합하고 새로운 회계기준을 만드는 것이
단기간에 쉽게 이루어지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성공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정부 회계의
복식부기를 언제까지 연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당장은 혁신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는 지방자치 단체들
예를들어 시도나 군구청의 자치 단체들이 이제도를 도입한다면 지자체의
효율성 제고와 경영평가는 혁신적으로 제고될 것으로 생각한다.

비젼있는 단체장들이 회계 제도의 개혁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