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 홍명희가 쓴 "임꺽정"에 보면 청석골 도적 오가의 장인이 심심하면
"거미를 배워라. 왕거미, 떡거미가 네 선생이다"라고 늘상 얘기하고 있다.

M&A 업무와 관련된 당사자 뿐 아니라 중개인에게 있어서도 거미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최근 기업 인수 시장의 확대와 함께 너나할것 없이 거액의 수수료를
목표로 개인 중개인들이 난립하고 있는 시점에 과연 중개인으로서의
요건은 무엇인지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거미는 탐심이 많다.

탐심의 동인은 적극성과 열의일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중개 업무에 대한 뚜렷한 목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즉 그 탐심은 재무의 동기 이외에도 한국 M&A사에의 일대 공헌이라는
이념과 철학을 깔아야 한다.

최근 빛나는 인수 실적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 대한 과욕으로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잃고 있는 모 중개인의 경우는 탐심이 한쪽으로만 치우친
좋은 경종의 사례가 될 것이다.

거미는 또한 줄을 잘 늘린다.

기업 인수는 단순히 쌍방을 소개하는 부동산 거래나 중매 이상의
종합 경영 전략 기법이다.

영업 시스템을 통찰하여야 하며,복잡한 제반 업무와 협상을 완결시킬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 작은 몸매에서 끊임없이 줄을 뽑아 내는 능력은 어쩌면 1인
비즈니스로서 수천억원의 기업인수를 성사시키는 중개인의 능력에 비유될
만하다.

끝으로 거미로부터 배울 가장 중요한 점은 흉물스럽도록 참을성이
많다는 것이다.

고가나 오래된 헛간과 같은 인적없는 곳에 줄을 쳐놓고 언젠가 걸려들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의 인내는 거미의 장점 중 가장 으뜸으로 꼽을수
있다.

때로는 긴박하지만 상당한 기간 동안 좌절과 고통을 겪어 내야만 기업
인수의 고지에 오를수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