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슨 시스템 필리핀사의 한동건사장(52)은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작업복을
거의 입지 않는다.

그렇다고 양복을 입는 것도 아니다.

"바롱"이라고 하는 필리핀 고유의 의상을 고집하는 것이다.

"필리핀에서는 바롱이 양복에 넥타이를 맨 것보다 더 정장으로
인정받습니다.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필리핀에서 필리핀인들의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
세계에 내다 판다면 사실상의 필리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조입니다"

30여명의 우리 인력과 3,500여명의 필리피노들을 거느린 사령탑답게 그는
프로다.

현지인들의 정서를 이해 못하면서 그들로부터 좋은 제품을 바란다는 것이
무리임을 한사장은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우리 직원들이 열심히 하고 있고 이 사람들도 정성을 다해 제품을
만들고 있지만 한국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들은 성탄절과 일요일을 빼고는 토요일도 없습니다.

성실과 근면으로 커버한다고나 할까요"

물론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하면서 한사장은 요즘 한국의
근로자들이 너무 많이 노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전하기도 했다.

자신은 필리핀에서 오랜 생활을 한 탓에 별 문제가 없지만 새로
한국에서 부임해오는 직원들이 음식과 기후가 맞지 않고 문화적
갈등으로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다며 한사장은 웃는다.

"우리 직원, 필리핀 친구들한테 모두 이야기합니다.

코리안 컬처도 버리고 필리핀 컬처도 버리고 맥슨 컬처를 만들어
나가자고 말입니다"

맥슨의 필리핀 진출 8년여를 처음부터 지켜본 한사장은 남달리 벅찬
보람도, 아픈 추억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해외진출을 계획하는 우리 기업들에 보내는 그의 조언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한사장은 맥슨이 MAXIMUM 과 "작동중"이라는 뜻의 ON이 합쳐진 합성어임을
설명하면서 필리핀에 진출한 외국기업 가운데 진정한 "맥슨"이 될 것임을
다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