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고 있으려면 오묘한 세상살이의 이치가
그안에 들어 있음을 실감한다.

"돌이 죽고 사는 일" "집의 크고 작음"이 바둑의 기본원리지만 곧
죽을 것 같은 수가 기가 막힌 수로 살아나는가 하면 자기수만 무리하게
두다 꼼짝없이 당하기도 한다.

바둑이 주는 묘미다.

취미중에 남녀노소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둑이다.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즐길수 있는 예의바르고
지적인 게임이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화니백화점 내에도 바둑동호인 모임이 있다.

회원들의 수준도 완전초보부터 아마추어 1단 정도의 수준까지
천차만별이고 회원수도 50명 가량으로 비교적 많은 편이다.

필자를 비록 권종채 관리이사, 강신두 특판팀장, 김덕열 CS추진팀장,
최규성 영업전략, 이명규 주임 등 영업부서와 관리부서 사원들이 한데 모여
우의도 다지며 서로의 애로사항도 이해할수 있는 계기도 되는 바둑동호인
모임은 백화점 폐점시간이 끝나고 모이다 보니 저녁 8시30분부터나
시작된다.

유통업체 종사자들은 "박스와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1주일 단위로
교체되는 행사교체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편이다.

하루를 마감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신관문화센터로 하나 둘 모이는
이유는 바둑이 주는 매력을 쉽게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둑은 무척이나 정적인 게임으로 보이지만 바둑판 안에서는 치열하고
무서운 전투가 벌어진다.

바둑을 두는 이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침묵하는듯 하지만 잡히고 죽는
싸움을 은연중에 하고 있는 것이다.

회원들은 게임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내인관계의 폭을 넓힌다.

급이 높다고 하여 그날 승율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바둑을 끝까지 두기 전까지는 승패를 알수 없기 때문이다.

바둑은 두면 둘수록 늘고 그 재미는 더해진다.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게임으로 야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순대 튀금 김밥 등으로 허기를 간단이 때우고 대전이 끝나면 회원들끼리
간단한 술자리를 갖기도 한다.

비즈니스부터 정치 사회 경제 등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기분좋은
취기를 통해 풀어낸다.

흔히 바둑을 두게되면 주의력 집중력 분석력 인내심 등이 자연스럽게
길러 진다고 한다.

필자 역시 경영을 할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반세가 좋을 않을 때는 수비의 미덕을 배우고 쓸모없는 돌은 과감히
버릴줄도 알며 가망이 없는 곳에는 절대로 돌을 놓지 않는다.

동적인 레포츠나 스포츠도 많지만 바둑을 즐겨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일컫는 바둑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