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장(사진)이 지난 7일 인천 송도 쉐라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신년 집행부 워크숍에서 “매년 4월과 10월을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 발판이 될 한국상품박람회의 장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박 회장은 이날 “오는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2박3일간 경북 안동에서 열리는 수출상담회 명칭을 ‘한국상품박람회 안동(Korea Business EXPO Andong)’으로 정하고 월드옥타의 대표 행사로 육성, 브랜드화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월드옥타는 지난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기존 수출상담회 규모를 키워 420개 상품 부스를 개설했다. 동포 경제인뿐만 아니라 유럽 현지인 바이어들이 참여하는 한국상품박람회를 열어 역대 최대 수출 성과를 올렸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두 달 뒤 안동에서도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이 이어지도록 대회를 준비할 계획이다. 10월 인천에서 열릴 세계대표자대회 명칭도 4월 행사와 연계성을 가지도록 영문 명칭을 ‘Korea Business Expo, Incheon’으로 정했다.박 회장은 “경상북도와 안동시에서 100개 기업이 참여하고, 다른 지역과 월드옥타 회원사 업체가 150개 부스를 개설해 총 250개 부스 규모로 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월드옥타 회원 800명과 이들과 동반한 해외 현지 바이어 200명 등 1000여 명이 수출 상담에 참여할 것”이라며 “경상북도는 외국인 바이어들의 편의를 위해 안동 시내 고급 호텔을 통째로 예약해 제공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박 회장은 바이어와 중소기업 간 매칭이 잘 되도록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2월 말까지 참가 업체 현황이 담긴 디렉토리북
2025년 벽두부터 미국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중국 딥시크 충격 등으로 세계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딥시크는 저가형 그래픽처리장치(GPU) H800을 사용한 생성형 인공지능(AI) 추론모델 R1의 오픈소스를 공개해 충격을 줬다. 오픈AI의 챗GPT에 비해 개발 비용을 18분의 1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주목할 것은 딥시크의 모회사인 하이플라이어가 2021년 엔비디아로부터 A100 1만 장을 구매하고 AI 기술을 연구해 왔다는 점이다. 딥시크 R1 모델은 뛰어난 중국의 인재들과 다양한 테스트가 가능했던 넉넉한 자체 AI 인프라가 바탕이 됐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H100 보유량은 약 2000개다. 같은 기간 메타, 마이크로소프트의 15만 개는 물론 딥시크 A100 1만 장(H100 환산 기준 2500~5000개)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정부는 열악한 국내 AI 인프라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올해부터 H100 1만5000장 수준, 1EF(엑사플롭스) 이상 성능을 지원하는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에 나선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 정책금융기관은 이 사업을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고 향후 설립할 특수목적법인(SPC)에 2000억원을 출자할 예정이다. 또 최대 2조5000억원의 대출상품을 신설해 구축 및 운영 자금을 지원한다. 정부는 신속한 사업이 가능하도록 전력계통 영향평가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세제 지원은 물론 공공사업을 연계해 초기 수요도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AI 기업들은 H100 수급난이 발생했을 때 우선순위에서 밀려 수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국가 AI컴퓨팅센터가 설립되면 이런 불편함이 최소화될 것으로 기대한다.생성형 AI 출현 이전 구글은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의 90%를 점유하며 시장을 이끌어 왔다. 구글이 검색엔
“지혜와 땀방울 함께 쏟아서/모두가 뛰어난 우리 제품들/만들자 보내자 벌어들이자/번영에의 외길은 수출뿐이다(후략).”1964년 한국은 대망의 수출 1억불을 달성했다. 그 벅찬 감동을 기리기 위해 만든 ‘수출의 노래’ 가사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였다. 지난해 우리 수출액은 6838억달러로 순위로는 세계 6위다.미국 국제문제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는 1960년 10월호에 최빈국 한국을 향해 이런 글을 올렸다. “한국은 경제 발전 가능성이 전혀 없는 나라다.” 이를 보란 듯이 뒤집고 선진국으로 들어서게 한 원동력은 수출이었다.과거 상공부 시절, 장관과 직원들은 책상 한가운데 ‘수출입국’이라고 써놓고 매일 수출입 일보를 작성했다. 이는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손바닥 크기로 요약해 상의 윗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 결과 가발과 완구, 심지어 돼지털과 오줌조차 외화벌이의 소재가 됐다.한국 수출은 농산물이 포문을 열었다. 그때도 1차 상품의 경우 높은 국내 가격과 낮은 국제 가격이 수출의 난관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1954년 ‘수출장려보조금’을 처음 마련한다. 이런 지원에 힘입어 생사, 쌀, 인삼, 담뱃잎 등이 선발대로 나섰다. 이 중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생사(生絲)가 단연 선두였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 양잠업이 성했다. 당시 농촌에서는 너나없이 뽕잎을 따다 누에를 쳤고 도회로 나간 앳된 누이들은 잔업을 하며 명주실을 뽑았다.수출은 장사다. 장사는 시장 규모에 좌우된다. 세계 교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은 먹는 장사인 ‘농식품 시장’이다. 한국식품연감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9조7800억달러. 이는 세계 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