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부동산정책은 뻔해요.

땅값이 고개를 들면 요란하게 투기억제책을 발표하고 세금을 올립니다.

그러다 부동산이 얼어붙으면 슬그머니 부양책을 내놓는 식이지요.

또 몇년 지나 투기조짐이 보이면 양도세를 다시 강화하고..

토지는 한정돼 있는데 수요만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헛다리를 긁었지요"

최근 중미로 봉제설비를 모두 옮기고 국내 사업을 청산한 K사 H사장.

그는 우리나라 땅값이 사업을 못할 정도로 높아진 것은 결국 "정부 실패
탓"이라고 잘라 말한다.

일관성없이 "조변석개"를 거듭해온 정부 정책이 고지가 구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국내 토지정책의 변천과정을 보면 H사장의 지적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한 "전가의 보도"인 양도소득세제의 변천사는
정부정책의 "조변석개사"에 다름아니다.

지난 30년간 무려 15차례 이상 수술됐으니 말이다.

토지가격이 꿈틀거릴 때마다 이 칼을 휘두른 셈이다.

이 세제가 처음 생긴 건 지난 67년.

경부고속도로 등 대형공사가 포함된 경제개발계획이 본격화되면서 땅값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을 때였다.

당시 정부는 땅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양도세의 원조랄 수 있는 "부동산
투기억제세"를 도입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68~69년에 전년보다 최고 80%까지 치솟았던 땅값상승률이 70년 들어서는
전년보다 20% 상승하는 선에서 안정세를 보였다.

수요만 잘 묶어놓으면 땅값은 언제든지 잡을 수 있다는 착각이 들만했다.

그래선지 정부는 71년엔 부동산투기억제세의 면제범위를 확대해 투기
억제책을 거둬들였다.

땅값이 서서히 올라 73년부터 다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자 그 이듬해에
정부는 양도소득세를 제정한다.

여기다 법인세와 특별부과세를 덧붙여 땅값을 찍어눌렀다.

이름만 달라졌을 뿐 67년의 처방 그대로다.

다만 좀 더 "독한" 약으로 성분을 강화했을 뿐.

그러나 이 조치도 75~76년 땅값상승세가 둔화되자 유야무야 돼버렸다.

이같은 "투기억제"와 "경기부양"의 반복은 3~4년을 주기로 최근까지
이어졌다.

"몇년 있으면 뒤바뀔 정부의 정책은 힘을 가질 수 없다.

땅갖고 있으면 결코 손해보지 않는다는 땅값신화가 뿌리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H그룹 P전무)

일관성이 없는 것 뿐이라면 사실 개선의 여지라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수요"규제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는 사이에 정작
필요한 "공급"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한정된 국토에서 가용토지(전국토의 4.7%)가 좁으면 바다를 메우거나 산을
헐어서라도 쓸 수 있는 땅을 늘려야 하는게 기본이다.

그러나 정부는 66%를 차지하는 산림지와 22%정도되는 농경지는 대부분
보전용도로 지정해 놓고 수요자들이 목놓아 울어야 아주 조금씩만
풀어줘왔다.

소위 "선보전 후개발"정책이다.

"정부가 토지를 생산의 기본요소로 보지 않고 있다"(P기업 L사장)는
비아냥이 나올 만도 하다.

투기를 막을 줄만 알았지 토지를 어떻게하면 늘리느냐엔 관심이 없었다는
얘기다.

공급해본 경험이 적으니 해보려고 해도 잘 안된다.

어느 곳에 무슨 업종을 위한 어떤 땅이 필요한지도 계산이 안나온다.

94년말 현재 전국의 공업단지 총면적 8천7백만평 가운데 3천만평이
미분양상태로 남아있다는 통계(삼성경제연구소)가 이를 입증한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정부정책은 "규제"와 "완화"를 오가며 관리하려던
"수요"도 놓치고 공급에선 역량도 못 쌓았다.

정책의 실패는 결국 고지가라는 대가를 남겨놓았다.

고지가만 남은게 아니다.

정책방향을 바꿀 때마다 새롭게 도입된 정책수단과 투기억제세들이 규제로
작용하면서 지가의 "하향안정"을 방해하고 있다.

우선 정책수단을 보자.

취득과 관련된 것만 모두 8가지다.

토지거래허가제 택지취득허가제 여신관리취득승인제 부동산등기의무제
부동산실명제 등.

살 때만 번거러운게 아니다.

보유나 개발 단계에서도 챙겨야할 서류는 산더미같다.

택지소유상한제 농지소유상한제 용도지역지구제 유휴지지정제 대리경작제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

세제도 이에 못지 않다.

땅을 살 때 내야하는 취득세 등록세, 갖고 있다고 물어야 하는 재산세
종합토지세 택지초과부담금 개발부담금 토지초과이득세, 팔거나 물려줄 때
내는 양도소득세 증여세 등 기본세제만 9가지다.

여기다 도시계획세 공동시설세 농지세 법인세 특별부가세 자산재평가세
등의 세율도 만만치 않다.

정책실패의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얘기다.

원인이 분명히 밝혀진 만큼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정부가 정책실패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 유물들의 제거작업에도 책임을
져주어야 한다.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수요관리는 부동산실명제를 철저히 시행하는 것으로 일원화하고 토지공급
확대방안을 적극 강구하는 것"(전경련 관계자)이다.

"투기는 원천봉쇄하되 토지 사용가치를 높이는 투자를 적극 권장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주지 않되 수십년의 사용권을 주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김주형 LG경제연구원이사)

< 정리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