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스승의 존재는 지고했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에서 보듯이 임금이나 아버지와 같이 절대적인
위치에 있었다.

옛날 서양에서도 "아버지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있게 하기를 배웠다"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한 기록처럼
스승은 존경의 대상이었다.

동양사회에서 제자가 스승에게 지켜야할 예의는 까다롭기 그지 없었다.

그 극단적인 예증인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도 말라"는 속담에서
찾아진다.

특히 중국의 고전인 "예기"에는 스승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시사해
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선생을 따라 갈 때에는 길을 건너가 남과 말하지 않으며 선생을 길에서
만나면 종종걸음으로 나아가 바로 서서 두손을 마주 잡고서 선생이
말씀하면 대답하고 말씀하지 않으면 종종걸음으로 물러간다"

"선생의 서책과 금슬이 앞에 있거든 꿇어앉아서 옳게 놓아 조심하여
넘어가지 않는다"

"선생을 모시고 앉았을 때에 선생이 물으시면 그 물음이 끝난 뒤
대답하고 학업을 청할 때에는 일어나고 더 물을 때에도 일어난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보면 고리타분하기 이를데 없는 예절들이지만
전통사회에서는 그것이 사람의 윤리를 바로 잡고 사회의 기강을 세우는
기본적인 규범이었다.

스승의 그러한 절대적 위치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양의 민주화
사상이 이 땅에 날로 이식되면서부터다.

금년 들어선 대학생들이 스승의 머리를 강제로 삭발하고 스승에게
폭력을 휘두르는등 인륜이 막다른데까지 추락해 개탄을 금치 못하게
한바 있었다.

최근에는 한국의 최고 지성 산실이랄수 있는 서울대의 한 노교수가
일부 대학생들의 무더진 예절을 질타하는 글을 "대학신문"에 기고해
스승의 추락된 위치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교수가 연 문을 먼저 밀고 들어오는 학생,학생이 형식적으로 고개만
까딸 해 교수를 불쾌하게 하는 인사,교수 앞길을 막고 떡 버티는 학생 등의
실례에서 스승의 현주소를 읽게 된다.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국사회의 총체적 교육환경이 왜곡되어온데서 찾아내야
할것이다.

인성교육을 무시한 입시교육의 제도와 그에 따른 가정교육의 부재,
지도층을 비롯한 기성세대의 무범력 상실과 그에 따른 신세대의
장유유서관념, 외면 등이다.

그런 환경에서 "버릇없는 학생"이 생겨난 것이라고 책임은 어디까지나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은 기성세대에게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