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크리교수에 대해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이미지는 매우 소탈한 성격
이면서도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전형적인 학자라는 점이다.
비크리교수와의 인연은 지난 81년부터 89년까지의 컬럼비아대학 유학시절
에서 시작됐다.
85년에 비크리교수가 은퇴를 했기 때문에 직접 강의를 듣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이런 이미지가 굳어진 것은 세미나장에서 비크리교수가 보여줬던
행동, 그리고 평상시의 모습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세미나장에서 비크리교수는 신문을 읽기가 일쑤였고 심지어 가끔씩은
졸기까지도 했다.
신문은 항상 옆구리에 차고 다니던 뉴욕타임즈.
그러나 세미나 끝무렵엔 어김없이 "과연 대가"라는 느낌이 들만한 행동이
나타났다.
발표논문의 내용을 완전히 꿰뚫는 듯한, 그래서 발표자를 당혹스럽게 해
절절매게 만드는 질문들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런 면외에도 노넥타이에 주름없는 허름한 바지를 입고 다니기로 유명했고
자판기에서 쵸콜릿을 사먹는 동심어린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여 줬다.
비크리교수가 진가를 발휘한 것은 60년 하바드대에서 발행된 "계간 경제
저널(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에 발표한 논문에서였다.
불확실성하에서 합리적 개인의 전략과 사회적 의사결정의 함수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논문은 불확실성 모델의 원천이 됐고 후생함수 발전에 기념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특히 "가장 합리적이고 사회적인 의사 결정룰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처지
지위 역할 개인 기호 의사결정권의 정보가 차단된 상황에서 내릴때
정의롭다"는 "무지의 장막"이란 개념과도 연결됐다.
즉 존 하사니교수의 신공리주의, 존 롤스교수등 신계약주의 사조의 원형이
된셈이다.
비크리교수는 이같은 업적으로 90년대초 "미경제학회지(American Economic
Review)"에 "저명인물(distinguished fellow)"로 선정돼 표지를 장식했으며
미국립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의 소장을 역임
하기도 했다.
케네스 애로우교수(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지도교수로도 유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