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원천동일대 공업단지내에 자리잡고 있는 필코전자.

컨덴서류를 생산하는 이회사는 공장입구부터 시원한 공간배치와 함께
판넬식 대형건물이 줄지어 있는 등 외국공장을 연상케 하고 있다.

지난 74년 필립스가 전액 출자해 세운 필코전자는 세계적인 회사의 현지
법인 답지않게 노사관계는 최근까지 파행을 기록했다.

고품질 컨덴서를 만들며 지난 86년까지는 그럭저럭 꾸려오던 회사살림이
87년부터 누적된 노사불협화음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이후 노사간 대립이 심화된 필코전자는 91년 11일간 전면파업을
경험했으며 94년초까지 매년 5-7일간의 파업이 연례행사로 진행됐다.

수원지역에서 필코전자의 노동운동이 강성으로 평가받는데는 이때의
파행이 큰 원인이 됐다.

윤문태 노조위원장은 이같은 파행에 대해 "당시 필코전자가 의사결정
권한을 쥔 책임자가 없어 노사협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데다 수지분석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유럽식 기업관리로 종업원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진단한다.

이때 3년 연속 적자를 나타내는 등 한계에 부딪친 필립스는 마침내 94년초
필코전자를 매각했다.

필코전자를 인수한 윤철중사장은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이완된 근로의식을
다잡는 것이 수습의 출발점이라고 보고 부임하자마자 쓰레기줍기를 솔선
수범하는 등 공장환경개선과 현장근무체제를 강화해 나갔다.

지난 5월에는 노조요구 없이도 창고건물을 개조, 40평규모의 아담한
복지관을 조성해 회사가 스스로 근로자복지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
불신에 차있던 근로자들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임금협상결과는 근로자들의 의식을 완전히 돌려놓는 계기가 됐다.

노조의 예상치를 훨씬 넘는 16.15%의 임금인상율을 회사에서 먼저 제시,
임금협상을 전격 타결한 것이다.

회사에서 앞장서 이익을 나누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노동조합과 근로자들은
곧바로 회의를 열어 생산성 향상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이를 전사원에게
공개했다.

50일간의 기한으로 전개된 이운동에서 이틀분량의 생산성 향상효과가
측정됐고 윤사장은 즉시 하루치는 현금으로 또 하루치는 여름휴가에 하루를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

윤사장은 ""솔선수범, 정성을 다하자, 5대5"의 사훈처럼 회사간부가
앞장서는 가운데 이익을 비롯한 모든 복지는 노사가 대등하게 향유한다는
평소 소신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며 "특히 5대5는 금전적 측면뿐 아니라
회사의 주인은 노사가 절반씩 나눠가진다는 의미로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필코전자의 매년 임금협상도 독특하게 진행되고 있다.

먼저 윤사장은 사측 교섭위원에게 몇 %에서 타결지을 것을 지시하지
않는다.

단지 경쟁력 범위 안에서 인상율을 정하도록 당부한다.

타결뒤 결재하는 것으로 사장임무를 다할 뿐이다.

노조측도 협상 3개월전부터 수원지역 물가와 임금실태, 생계비를 조사해
자료를 만든뒤 협상테이블에 앉는다.

공개된 경영정보속에서 합리적인 타결을 이뤄내는 이같은 노사의 태도로
올해는 3차례 협의만에 타결하는 성과를 만들어 냈다.

필코전자의 성숙된 노사관계는 기업의 생명이랄 수 있는 생산성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6월부터 이회사의 하루 생산량 6백여만개를 넘는 컨덴서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라인증설 없이는 불가능하다는게 주위의 관측이었으나 몇달 안돼
7백50만개로 생산량이 늘어났다.

제품에 정성을 쏟는 근로자들이 주변으로 파급효과를 일으키면서 불량율이
10ppm에서 1.5ppm으로 크게 낮아지면서 이같은 일을 성취한 것이다.

지금은 라인증설이 겹쳐 월간 8백50만개까지 만들어내고 있을 정도다.

윤위원장은 "노사 쌍방이 한쪽으로 지우치지 않고 불신의 벽을 허무는
노력을 해간다면 회사발전과 이익의 공유가 동시에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한다.

필코전자는 안정된 노사관계속에 오는 2000년까지 5백억의 매출을
달성하고 장기목표로 1천억원을 올려 세계 5위내의 기업으로 올라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 김희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