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이 이전에 이향원에서 연극 연습을 하며 악기를 조금씩 익힌
아이들을 모아 악대를 급조하였다.

드디어 밤이 되어 보채를 태운 가마가 풍악이 은은히 울리는 가운데
신방이 차려진 별채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붉은 색실로 수를 놓고 갖가지 조각들이 새겨진 그 가마 뒤로는
열두개의 등롱을 든 시녀들이 천천히 따라왔다.

그 등롱에는 신부 가족의 이름과 신랑 가족의 이름들이 역시 붉은
글씨로 쓰여 있었다.

신방에서 왕부인의 방으로 건너가 신랑 예복으로 갈아입은 보옥이
미리 와서 신부의 가마를 맞아들였다.

물론 보옥은 가마 안에 틀림 없이 대옥이 앉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놋거울을 든 어린 시동이 가마로 다가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아뢰었다.

"신부님, 가마에서 내리시지요"

가마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이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붉은 옷을 입은 들러리들이 가마의 문발을 들치고 신부를 부축하여
가마에서 내렸다.

대옥의 시녀인 설안도 들러리 일을 맡았는데 그것은 희봉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보옥으로 하여금 다른 의심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신부는 왕비처럼 어여머리를 해서 올리고 용을 수놓은 붉은 겉옷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머리와 목, 귀와 팔목, 그리고 옷 구석구석에 매달린 금 은 옥 패물들이
등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런데 신부는 너울을 쓰고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보옥은 자기가 입은 옷뿐만 아니라 가마와 등롱, 신부와 들러리 옷 들이
온통 붉은 색이어서 언뜻 핏빛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귀를 내어쫓고 복을 가져온다는 그 붉은 색들이 이상하게 불길하게
여겨지기도 했으나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의 모습에 보옥은 넋을 잃고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원래 신부의 가마가 도착하면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게 마련인데 귀비
원춘의 상중이라 폭죽은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대신 가마와 등롱행렬 뒤를 따라온 악사들이 마당으로 들어서 아까
보다는 약간 경쾌한 음악을 연주하였다.

악사들의 행렬 한복판에는 큼직한 붉은 우산 하나가 우뚝 받쳐져
있었다.

악사 한 사람이 시경 국풍 소남편중에서 "작소"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다.

까치가 집 지으면 비둘기 가서 사네
아가씨 시집갈 때 수레 백 채 마중하네
까치가 집 지으면 비둘기 함께 사네
아가씨 시집갈 때 수레 백 채 배웅하네
까치가 집 지으면 비둘기 가득 차네
아가씨 시집갈 때 수레 백 채 따라가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