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한 < 산업2부장 >

"중소기업의 어려운 인력난을 그나마 충족시켜왔던 산업연수생제도가
무너지는 순간에 공포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용허가제, 노동허가제를 한다면 불법이탈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안)"과 관련, 신문사에 쏟아저
들어오는 팩스와 편지의 주요 내용이다.

찬성한다는 의견은 눈에 띄지않고 거의가 반대하는 쪽이다.

그것도 대충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누굴 죽이려고 하느냐"라는 반응이다.

이번에 발의된 외국인근로자 고용법안은 외국인근로자도 내국인과 동등한
대우를 해주자는 것이 골자이다.

이를 놓고 노동부와 통산부 등 관련 부처들이 한치의 양보없는 논쟁을
벌였다.

끝내 정부입법이 불가능해지자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

신한국당의 이재오의원을 비롯 총 29명이 발의한 이법안은 원하건 아니건
이번 국회에서 가부가 결판나게 됐다.

때문에 지금 이시점에서 이법안이 갖고 있는 의미와 파장을 분석해봐야
한다.

사실 이문제는 그동안 이해관계자들간에 무수히 논의돼왔다.

논의의 초점은 명분과 실리였지 않았나 한다.

명분론을 주장하는 쪽은 그동안 운영해온 산업연수생제도가 후진국형
인력정책이므로 선진국형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쪽이고 실리론을 주장하는
쪽은 다소 문제가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인력확보를 위해 연수생제도의
이점을 살려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시말해 명분론은 고용시장안정과 국제노동기구(ILO)협약에 따라
외국근로자에게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균등대우를 해주자는 것이다.

반면 실리론은 인력난의 심화 및 비용증가 노사관계의 불안정 등
현실적으로 파생되는 제반문제점을 꼽고 있다.

어느쪽이 옳다고 단정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업연수생제도가 고용 임금 생산성 등 경제적인 변수를 기반으로
도입된 제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리론에 더 무게가 실려야 할 것같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중시하는 것이 경제이기 때문이다.

노동허가제를 반대하는 쪽은 그야말로 현실중시이다.

실리를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실제 산업연수생을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자들이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외국인 근로자에게 임금 노동조건 등을 국내근로자와 동등하게 대우를 할
경우 연월차수당 상여금 퇴직금 등 추가적인 노동비용부담이 1인당 월평균
31만원이 더 들어간다(기협중앙회 조사).

외국인 근로자가 시간외근무를 할 경우 잔업수당을 포함하면 국내근로자
보다 오히려 임금이 앞지르는 현상까지도 발생한다.

이들에게 노동3권을 부여할 경우 국내근로자와 연대해 임금인상운동
또는 노동운동을 하게되면 노사관계는 불안해지고 생산성은 저하된다.

외국인근로자의 취업을 허용하면 가족들의 초청을 금지할 명분이 없어
불법 취업자는 더 늘어나게 된다.

현재 결혼식에 초청된 외국인가족의 90%가 잠적 국내에 불법체류하고
있다.

인력난 고임금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을 돕기위해 도입된 연수생제도가
노동허가제로 변질될 경우 오히려 중소기업을 죽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여기서 또 의문을 제기해보자.

우리보다 더 선진국이라는 일본도 아직 노동허가제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왜 우리가 일본보다 서둘러야하는가.

일본의 경우 지난 89년부터 92년까지 고용허가제로 논란을 벌이다가 결국
포기하고 93년4월 산업기술연수제도를 보완,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때 일본이 내건 이유는 사적인 고용관계에 대해 외국인이 행정청의
허가를 받는 것은 내.외국인의 평등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의 위배라는 점을
들었다.

대만 싱가포르의 경우 완전고용상태에서 부득이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고
있으나 이들나라 역시 불법체류 등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래 명분을 좋아한다.

이조 5백년 역사가 명분과 실리를 놓고 싸워온 역사이다.

병자호란때 주전론자와 주화론자의 싸움이 그랬고 노론 소론 등
사색당파의 싸움이 그랬다.

이제는 실리를 찾아야 할 때다.

또 얼마전까지 중소기업을 위해 애쓴다고 떠들던 국회의원들이 2백40만
중소기업인을 죽이는 법제정에 앞장서는 일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29명의 선량이 내놓은 "외국인근로자 고용법(안)"이 발의 취소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