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잘살아보자고 5년단위 경제개발계획을 처음 시작한게 엊그제
일 같은데 어느새 30년을 훌쩍 넘어 버렸으니 얘기다.

이 사이 우리 경제, 우리의 사는 모습은 참으로 많이 변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분주하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미화 100달러도 안되던 국민의 평균소득이 1만달러 이상으로, 농촌이
도시로, 초가가 고층 아파트로 바뀌고, 자동차의 홍수때문에 교통혼잡과
환경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와있다.

상상도 못했던 변화다.

이제 우리는 그런 지난날의 경제개발 역사를 뒤로 하고 또 한차례의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순간에 있다.

29번째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이 된 것이다.

1996년10월은 실로 한국경제의 새로운 탄생을 알린, 영구히 기억될
순간이라고 해야 한다.

가입에는 아직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OECD가입은 단지 시기 문제일뿐 언제건 가야할 길이었다.

일본이 32년전 가입한걸 생각하면 늦었다.

만약 빠르다면 이제부터 선진화에 가일층 노력하여 선진화를 앞당기면
된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지금부터 할 일은 바로 선진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경제의 선진화는 물론이고 정치와 사회등 모든 분야의 동시 선진화를
위해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해야 한다.

OECD 회원국이 곧 선진국이란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이라고 말할 처지가 못된다.

외부 세계도 선진국으로는 보아주지 않는다.

공산정권과의 결별선언 이후 시장경제를 도입한지 5년 남짓에
소리소문없이 OECD회원국이 된 체코 헝가리 폴란드에도, 외부 세계가
보기에는, 한발 뒤지는게 우리의 지구촌내 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멕시코와 같은 수렁에 빠진다든지, 뒤에 가서 가입을 후회하게 되는
것과 같은 사태는 없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부와 기업, 근로자와 정치인, 국민 각자 모두가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새 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선진화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가 지향할 선진화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그점부터 분명해져야 한다.

구미화가 곧 선진화는 아니다.

그래서도 안된다.

또 경제성장과 발전만이 선진화도 아니다.

정치와 사회 문화가 함께 발전하고 성숙해야 한다.

그래서 삶의 질, 삶의 내용이 선진화돼야 한다.

또 그 결과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책임있고 존경받는 일원으로 세계의
선두그룹에서 우리의 권익을 지키고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어야 한다.

갈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처지는 더욱
아니다.

3년 8개월전 김영삼정권의 출범에 국민은 큰 기대를 걸었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외교적으로 한단계 더 도약, 21세기의 선진국진입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전례없이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

새 정권이 내놓은 일단의 개혁 프로그램에도 공감가는 바가 적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망적이다.

아무리 후한 점수를 준대도 절반의 성공이라고 밖에는 말할수 없는
형편이다.

개혁과 변화를 시작하고 시도한 것 뿐이다.

이젠 시간도 얼마 안 남았다.

힘은 갈수록 약해질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의지이다.

하자고 들면 남은 시간으로도 충분하다.

옳은 일이면 국민은 지지로 힘을 실어줄 것이다.

지금부터 냉철한 자기평가를 통해 반성할 것, 잘못된 점, 앞으로 남은
임기내에 할 일과 다음 정권에 넘길것 등을 우선 차분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 일은 국가의 선진화를 위해, 4년 앞으로 박두한 21세기 준비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김정권의 마지막 책무이다.

우리에겐 이제 분명한 선진화계획이 필요하다.

그것은 언젠가 요란하게 거론되다가 소리없이 묻혀버린 21세기의
장미빛 경제비전이 아니다.

선진국은 돈으로 되는게 아니다.

경제는 단지 하나의 요건일 따름이다.

정치 사회 문화, 국민의 일상생활과 의식, 그리고 행동이 골고루
선진화돼야 한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선진국다워져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실로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엄청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이것만은 실현해야 한다.

안그러고는 안된다.

첫째 건전하고 활기찬 토론문화를 계발 정착시켜야 한다.

정부와 기업내, 크고 작은 공사조직, 가정에서 활발한 대화와 토론이
극히 자연스런 현상으로 자리잡아가야 한다.

그럴때 갈등과 마찰은 줄고 대신 참여와 창의가 활성화된다.

"열린 정치" "열린 경제" "열린 사회"가 열린다.

둘째 믿을수 있는 사회, 신용사회가 돼야 한다.

정부를 못믿고 기업이 불신받아서는 더이상 전진할수 없다.

모든 거래는 물론 일상의 사소한 약속까지도 서로 믿고 지켜지는
사회가 하루빨리 와야 한다.

셋째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가 돼야 한다.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한 음성거래, 분식 탈세 지하경제가 완전 근절까진
몰라도 최소한으로 축소돼야 한다.

그래야 부패가 사라진다.

준법과 질서가 자리를 잡는다.

넷째 합리적 사고와 의식, 그리고 행동이 모든 활동과 생활에서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시장경제가 제대로 기능한다.

상식이 통하고 막대한 시행착오비용도 감소한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정말 말로만이 아니고 행동으로 관우월적 사고와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이 진짜 주인이고, 민을 위해 관이 있다는 생각으로 입법 사법
행정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 작은 정부의 실현, 규제의 획기적 철폐도 가능해진다.

선진화와 함께 우리에겐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를 통일비용을 축적해야할
과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 경제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 빠른 성장을 해야 함을
뜻한다.

선진화와 빠른 경제성장, 이를 통한 국민생활의 질적-양적 향상에
정상의 종합경제정보 매체로서 충직한 길잡이 역할을 하려는게 오늘로
창간 32돌을 맞은 의 굳은 각오이자 다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