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을 계기로 개방의 속도는 점점 빨라질
전망이다.
불과 2년뒤인 98년이면 외국금융기관이 은행 증권 보험 투신 등 대부분의
금융업종에 다양한 형태로 진출할 수 있게 되고 2000년께면 저리의
외화자금이 밀려 들어 올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린다.
이미 산업분야는 개방이 대부분 완료돼 국경이 거의 허물어진 상태다.
방위산업 등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의 업종에서는 어떤 외국기업이라도
국내에서 국내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있다.
다국적기업인 IBM이 출자한 회사가 국내컴퓨터시장을 주름잡은지 이미
오래다.
외국제품 수입도 마찬가지.
코카콜라 리바이스청바지가 청소년들의 감각을 바꿔놓은 것은 옛날이고
벤츠니 BMW니 하는 고급외제차들도 더이상 낯설지 않다.
불과 2~3년뒤면 금융에서도 이처럼 국경이 허물어진다.
외국기업과 외국제품이 우리시장을 자기네 안방처럼 누비는 것과 같이
금융분야에서도 외국금융기관 외화자금이 밀물같이 밀려들게 된다.
조지 소로스같은 국제적인 투자전문가가 운용하는 회사가 국내 일반인들의
자금을 끌어모아 국내금융시장을 휘저어놓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국내금융기관끼리 아옹다옹하던 금융시장이 치열한 싸움터로 변모하게
되고 사활을 건 경쟁에서 쓰러지는 금융기관도 속출하는 상황이 멀지않은
것이다.
반면 금리가 국제금리수준에 근접함에 따라 기업이나 일반인들이 보다
값싸게 돈을 빌릴 수 있고 질좋은 금융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이 경제의 혈맥이므로 섣불리 개방하기 보다는
경쟁력을 키운뒤 서서히 개방한다는 입장을 지켜왔었다.
정부가 경제개발을 주도했던 70~80년대 관치금융의 여파로 대형은행들이
많은 부실을 떠안고 있는 것을 포함한 여러 상황을 감안한 것이었다.
주식시장의 경우 지난 92년에야 외국인이 종목당 10%한도내에서 국내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됐으며 그 직전에 외국증권사의 국내지점설치가
허용됐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는 당초 10%에서 2~3%씩 단계적으로 인상돼 20%에
이르렀다.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폐지되는 2000년 이전까지는 매해 3%씩 한도가
늘어난다.
정부가 금융시장을 조심스럽게 단계적으로 열어온 전형적인 패턴이다.
생명보험업종이 외국인에게 가장 많이 문호가 개방된 업종이긴 하지만
합작생보사의 경우 얼마전까지만 해도 회사이름을 짓는데까지 제약이
있었다.
우리식이름과 외국측파트너의 이름을 동시에 넣도록 함으로써 시장진입을
제한하고 국내생보사를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정부가 그만큼 국내금융업계를 애지중지 감싸왔던 것이다.
은행의 경우 지난 67년 시티은행을 비롯한 일부 외국은행이 지점형태로
진출한 이후 70여개 외국계 은행지점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해외자금이 국내에 급격하게 유입돼 통화를 팽창시키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이들이 국내에 들여와 영업을 할 수 있는 자금에는 일정한
한도가 있다.
이 덕분에 국내은행들은 외국은행들을 의식하지 않고 영업을 할 수
있었다.
여기에다 내국인의 금융산업진입마저 허가제로 운용되다보니 국내금융
산업은 가장 발전이 더디고 국제경쟁력이 뒤떨어진 분야가 돼버렸다.
금리는 국제금리의 2배나 되고 꺾기는 악명이 높을 정도였다.
반면에 경영성과가 나빠도 은행장들은 연임하기 예사였고 직원들의 임금은
올랐다.
금융기관들이 기업을 심사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최근 들어서의 일이다.
기업들이 고금리를 이유로 해외로 탈출하고 산업공동화까지 우려되는
상황이 되자 점진적 개방론은 설 땅을 잃었다.
선진국들의 개방압력과 OECD가입추진이 계기가 됐지만 정부도 금융개방
없이는 경제전체가 발전할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98년 은행과 증권업이 전면 개방되고 2000년에는 현금차관성격을 제외한
모든 외자도입의 길이 트이는 등 금융개방일정은 숨가쁘게 잡혀져 있다.
금융개방일정이 확정된 만큼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개방속도가 너무 빨라 우리경제가 감당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도 적지않다.
핫머니의 교란 통화팽창 등에 따른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정부가 최근 은행에 비상임이사중심의 이사회제도를 도입하고 금융산업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제정키로 한 것은 금융기관의 내부체질을 강화해 이같은
개방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하자는 포석이다.
정부의 경제운용능력이 개방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지가 금융개방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다.
금융이 개방될수록 시장은 시장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고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줄어든다.
정부가 신탁계정의 가계대출축소 해외투자시 자금조달의무비율부과 등과
같은 갑작스런 지침을 만들어 시장을 통제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게 된다.
기업과 일반인들에게도 금융개방은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신용도에 따른 금리차등화는 더욱 심해지고 부실거래자는 신용카드한장도
발급받기 어려워지게 된다.
결국 정부 금융기관 기업 개인 등 각 경제주체들이 새로운 질서에 얼마나
발빠르게 적응하느냐가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이다.
< 김성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