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응용물리연구실 한택상박사(44)는 등산을
즐긴다.

휴일이면 어김없이 간편한 차림으로 집근처 산을 찾아 나선다.

지난 78년 서울대(재료공학)를 마치고 KIST식구가 된 후 계속해온 일이다.

그는 등산이 연구활동과 여러모로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의 산에 오르면 마주하는 더 높은 정상이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연구자의 길을 말해주는듯 하다는 뜻이다.

자칫 잘못하면 미끄러져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일은 연구방향이 틀려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과 닮았다.

그는 등산에서 체득한 철학으로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과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목표를
향해 서두르지 않고 한걸음씩 확실히 내딛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적잖은 정상에 올랐고 마주하고 있는 거봉의 정복에도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KIST 입사직후 참여한 광섬유개발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짓는데
기여했다.

지난 83년 광섬유를 생산하기 위해 KIST가 금성 대한전선과 공동출자업체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구는 큰 힘이 됐다.

이 구상은 다른 대기업체에 의해 불붙은 해외기술도입경쟁으로 흐지부지돼
빛을 잃었지만 광섬유제조의 기술적인 측면에 관한한 완벽했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이후 서울대에서 석.박사과정을 밟으며 특수용도의 광섬유개발과제를
수행했다.

지난 87년부터는 국책과제로 추진된 고온초전도체 관련연구에 참여했다.

주력분야는 0.5 정도로 얇게 가공한 세라믹 고온초전도체를 이용해 전자
소자를 만드는 것.

그중에서도 마이크로웨이브필터와 적외선센서개발에 주목해 왔다.

초전도 마이크로웨이브필터는 송신주파수 손실이 적어 특히 개인휴대통신
(PCS)과 위성통신의 수용능력을 현재보다 10배이상 끌어올릴수 있는 핵심
소자이다.

초전도체로 만든 적외선센서의 경우 생물체에서 나오는 열을 탐지하는
능력이 탁월해 군용 야간 탐지기나 의료진단용등으로 광범위하게 활용할수
있다.

초전도 마이크로웨이브필터는 미국이 이미 현장테스트를 마치고 내년께부터
실제시스템에 부분 적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등 한발짝 앞서가고 있으나
우리도 5년뒤면 실용화할수 있을 것으로 그는 자신하고 있다.

현재 실험실수준의 시작품이 기대이상의 성능을 보이고 있어서이다.

일 국제초전도연구센터(ISTEC)의 한개 연구부서에서 쓰는 예산보다 적은
돈으로 초전도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하면 대단히 빠른
성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연구환경이 최상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연구원 스스로가 부지런히
창의적인 연구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만큼 21세기 초전도세상은 우리의
손으로 열게될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 김재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