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성 <서울대 교수>

<> 약력 <>

<>핀란드 헬싱키대 경제경영대학 초청교수
<>서울대 상과대학 졸(경영학)
<>하버드대경영학박사
<>피츠버그대 객원교수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초청부교수
<>프랑스 구주경영대학원(INSEAD)초청교수
<>사단법인 상업정책연구원장(현)

====================================================================

[ 국제경쟁력 강화 위한 지름길 ]

한국 경제가 1986년에서 1989년 사이에 무역 흑자를 냈을 때 우리는
선진 국민이 된 듯한 환상에 빠졌었다.

그러나 1990년에 무역이 적자로 돌아서고 10% 수준에 달하던 경제
성장률이 1992년에 5%로 떨어지자 우리는 곧 국제 경쟁력을 잃고
후진국 신세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후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경제성장률이 8~9%수준으로 높아지고
무역수지역시 균형을 잡게되자 정부는 한국경제가 선진권으로 올라서고
있다는 전제아래 OECD 가입을 위한 정식절차를 밟기 시작하여 이제는
요식행위만을 남겨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올해 하반기에 들어오면서 경제성장률이 6%대로 떨어지고
무역적자역시 연간기준으로 사상최고수준인 190억달러가 예상되자
분위기는 또다시 위기상황으로 반전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이 국제경쟁력을 상실하여 2등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비관론이 기업인 학계 일반국민들사이에 널리 퍼져나가고
있고 최근에는 정부도 이를 인정하여 "경쟁력 10% 높이기 운동"이라는
정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나라의 경제는 그렇게 쉽게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후진국과 선진국을 구별하는 지표로 1인당 국민소득이나 무역수지를
흔히 쓰지만 정부가 응급처방식의 정책을 써서 일시적으로 이같은
지표를 높였다고 해서 후진국이 선진국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무역수지를 예로 들어보자.정부에서는 190억달러라는 무역수지적자가
현재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라는 인식하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총력전에 돌입했다.

그리하여 임금 억제와 환율 인하조치를 통해서 수출을 부양시키려는
의도를 가시화하고 있다.

그러나 무역수지와 국제경쟁력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직접관계가 없다.

예컨대 아랍 국가들은 원유 수출로 무역 흑자를 내고 있지만 국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반면 독일은 통독 과정에서 상당기간
무역 적자를 냈지만 그 결과 국제 경쟁력이 없어졌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무역수지는 국제경쟁력의 결과일뿐 국제경쟁력을 창출하는 원천은
아니다.

폐렴으로 인하여 열이 있는 환자에게 해열제만을 주어서는 안된다.

해열제는 환자를 일시적으로 편하게 해주지만 자칫 해열제의 부작용이
폐렴을 악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무역수지적자라는 상황에 처한 한국경제에 임금동결이나
환율인하라는 부작용을 유발하는 조치만을 취하면 극히 일시적으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무역수지 지표가 그럴 듯한 모습으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같은 과정에서 한국경제는 더욱 왜곡된 구조를 갖게 되고
경쟁력을 잃게 된다.

한국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가 짙은 구름처럼 전국을 덮고 있는
오늘날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현명한 의사라면 폐렴으로 인해 고열에 허덕이는 환자에게 일단은
응급조치를 취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를 가로막는 응급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

정부 역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는 무역수지를 수수방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정치의 해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에 쟁점거리를 제공하는 "사상 최대의 무역수지적자"
같은 결과를 야기할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출증가 수입억제를 위한 임시방편적인 조치가 한국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틀리게 해서도 안된다.

정부는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단기정책과
국민경제의 근본이 되는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장기정책을 동시에
상호보완적으로 채택해야 한다.

무역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조치에는 수출촉진과 수입억제가 있지만
이같은 방식에 정부가 앞장서는 일은 오늘날과 같은 무역개방시대에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수출업자와
수입업자들로부터 협조를 얻는 길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관리들이 민간기업들과 만나 그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민간기업으로부터 믿음을 얻어야 한다.

정부가 믿음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민간부문과의 약속을 하늘이
두조각 나더라도 지키는 일이다.

이러한 응급조치와 함께 정부는 한국경제가 국제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수 있는 장기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

한국경제가 중진국 수준에서 선진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국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한 나라의 국제경쟁력은 그 나라가 가진 물적자원 경영환경 관련산업
국내수요라는 네 가지의 물적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물적요인을 처음부터 모두 갖추고 경제발전을 시도하는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국민들-근로자 정치가와 행정관료 기업가
전문경영자 기술자-들이 위에 언급한 물적요인들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가운데 국제경쟁력이 향상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이 한 나라안에 존재하는 8가지 변수외에 오일쇼크 올림픽과
같은 외생변수도 경쟁력에 영향을 미친다.

앞서서 열거한 9개 요인이 한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면
그 나라가 가진 국제경쟁력의 크기를 판단할수 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나라가 겪게 되는 국제경쟁력의 변화모습을 동태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한 나라가 가진 국제경쟁력은 그 나라의 경제수준을 결정하는데
경제수준은 일반적으로 후진국 <>개도국 <>중진국 <>선진국의 단계를
거쳐 변화한다.

그런데 위에 든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9개 요인이 모든 단계에서
제각기 9분의1씩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계마다 주도적 역할을 하는 요소가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후진국은 물적자원과 근로자밖에 없는 나라이다.

이같은 나라에 경제발전에 대한 뚜렷한 비전을 갖춘 정치가가 지도자가
되어 행정관료와 함께 근로자와 물적자원을 결합하여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 태동할 수 있는 경영환경을 형성하게 되면 그 나라는
개도국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중진국은 정부가 경제에 대해서 갖고 있던 주도권이 기업가에게로
넘어가고 이들이 왕성한 투자의지를 갖고 여러 관련 및 지원사업으로
진출하면서 형성된다.

그러나 선진국은 경영자 기술자 디자이너 등 전문가 그룹이 바통을
이어받아 기업활동의 전면에 나서고 높은 소득을 바탕으로 튼튼한
국내수요가 형성되는 시기이다.

한국경제는 1960년대초에 경제성장의 불길을 댕긴 이래 15년만에
개도국단계를 성공적으로 졸업하였다.

그리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지난 20년간 경제구조를 중진국수준으로
변화시켜 오면서 선진국 단계로의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경제는 이같은 과정에서 몇차례 구조조정을 겪었고 그때마다
상당한 어려움을 극복했다.

중진국 단계로 들어선 70년대 중반 이후 발생한 첫번째 시련은 79~80년에
제2차 석유위기 및 박대통령 시해사건과 더불어 나타났던 경기침체였다.

이 첫번째 시련은 1980년에 경제성장률 마이너스6.2%라는 수치로
구체화되었고 당시 정부와 기업은 물가안정 정책과 전자.반도체.자동차
부문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극복하였다.

중진국 단계로 들어와 두번째로 불어닥친 시련은 1987년 6.29선언
이후 봇물처럼 터진 노사분쟁이었고, 그후 5년간 임금수준이 3배로
상승하는 어려움 속에서 기업은 자동화 노력및 해외투자로 이를
극복하는 전략을 택했다.

그 결과 국내 소비수준은 급격히 증가하여 내수시장이 탄탄하게
형성되었고, 기업은 국내시장과 해외시장을 탄력적으로 연계하면서
자구책을 모색했다.

이같은 과정에서 근로자 집단은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점차 상실하게
되었고 정부 역시 경제를 선도하는 위치를 민간기업 부문에 내놓게
되었다.

올해초에 이미 가시화 되었고, 하반기로 들어오면서 보다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는 경기침체는 한국 경제가 중진국 단계에서 세번째로
맞이하게 된 시련이다.

이번의 경기침체는 지난 두 차례의 경기침체와는 전적으로 성격을
달리한다.

지난 경기침체가 석유위기(1979), 정치권의 지각변동(1987)이라는
외생변수 때문이었다면 이번의 경기침체는 산업구조안에 아직도 존재하는
비효율성과 기업가들의 투자 마인드 위축이 결합하여 산업경쟁력 약화라는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경기침체는 경제내부, 특히 기업구성원들에게 보다
큰 책임이 지워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계 일부에서는 지금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이 총액임금제 같은 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현재의
어려움을 참아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이 근로자에게 책임을 씌우는 행태는 "근로자가 경제를
이끌고 간다"는 사고, 즉 후진국 멘털리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만이
저지르는 잘못이다.

또 오늘의 어려움은 정부의 비효율성이 큰 원인이므로 정부가
이제부터라도 보다 효율적으로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같이 정부에 책임전가를 하는 행태 역시 "정부가 경제를
이끌고 간다"는 개도국 멘털리티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 경제가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고 국제 경쟁력을 획득하여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즉 지금까지 경제를 주도해 왔던 역할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후선으로
물러서는 일이다.

반면에 이제는 전문 경영자와 기술자 디자이너가 전면에 나서야 한다.

즉 경영환경 변화가 심하고 복잡해지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는
전문적인 관리능력과 기술을 바탕으로 효율적 경영을 수행할수 있는 전문가
그룹이 경제발전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는 질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중진국 수준까지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주도세력이었던 기업가는 전문경영자가 기업을 선진화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기업 경영의 권한과 책임을 넘겨주어야 한다.

이제 전문가 집단이 기업을 이끌어 가면서 당면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산업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해 경영혁신을 실행해야 한다.

첫째 기업전체를 변화시키겠다는 경영자의 강력한 의지와 구체적
실천계획이 필요하다.

둘째 뚜렷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또한 기업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능별 수준이 아닌
기업전체 수준에서 사용해야 한다.

셋째 여러 가지 경영기법들을 상호 연결시켜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영자는 경영혁신이 자신의 책임하에 있는 핵심과제임을
주지하고 뚜렷한 목적아래 전략적 프로그램에 의해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

지금 우리경제가 선택할수 있는 정책대안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특히 정부가 앞장서서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기업이 확실하게 국민경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기업내부에서도 이제는 전문경영자가 전면에 나설때가 되었다.

이들이 자기 살을 베는 아픔을 무릅쓰고 경영혁신에 임할때 한국경제는
선진국을 향한 대장정에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