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땅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600여만그루의 "한솔 나무들"을
돌보고 있는 이동호한솔포렘대리(31)는 평사원이었던 지난 94년 6월에
이곳에 부임했다.

가족은 서울에 남겨둔 단신부임이었다.

처음 6개월은 외진 콜리에서 독수공방의 고독을 씹어야만 했다.

"오지라는게 별 겁니까.

어울릴 친구나 가족이 없고 주변에 즐길만한 문화시설이 없으면
오지지요"

그는 그해말까지 "나홀로" 생활을 하다가 가족을 불렀다.

그리고는 콜리에서 1년을 더 지낸후 올초에 서호주주의 주도인 퍼스로
근무지를 옮겼다.

"한 1년반동안 조림지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조림사업의 "나무"는
봤습니다.

조림사업의 "숲"이랄수 있는 호주산림청과의 협력업무,해외조림사업에
필요한 정책적인 문제등을 파악키위해 주산림청이 있는 퍼스로 나왔습니다"

이대리는 91년에 입사한후 해외조림사업일에만 매달려 왔다.

그래서 이 분야에선 누구못지 않은 전문가가 됐다는 자만심을 가질
때도 있다.

"콜리조림지의 첫번째 주재원으로서 어느정도 해외조림사업의 기반을
닦아 놓았습니다.

이곳에 나와 모든 것을 혼자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기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해외 어디에 나가도 조림업무에 관한한 자신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 1주일에 한두번정도 콜리조림지현장을 찾고 있다.

나무가 별탈없이 자라고 있는지 둘러보고 조림지에 파견나와 있는
호주산림청 직원들과 업무협력을 하기 위해서다.

"천연자원이 빈약한 우리로서는 해외에서 자원을 가꾸고 찾아내야
합니다.

이야말로 우리기업이 살고 나아가 우리나라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길입니다"

호주에서 우리의 나무를 가꾸고 있는 그는 이미 애국자가 돼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