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어요.

내가 통령보옥을 잃어버려 영역이 떨어졌으니까 악귀가 틈타기 쉽다
이 말이죠?

내가 통령보옥을 가지고 있을 때는 염라국의 귀졸들이 진종을 데리고
가려다가도 잠시 풀어주기도 했는데..."

보옥은 자신의 혼인식에 친구 진종이 없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게
여겨지는지 가만히 한숨을 쉬었다.

그 동안 사별한 사람이 어디 진종뿐이랴.

누가 귀비 원춘도 죽고 없고, 진가경도 없고, 진업도 없고, 대옥의
부모인 임여해와 가민, 녕국부 어른 가경 대감도 저 세상으로 가고
없었다.

"침상 머리맡에 거울이 걸려 있는데 그 거울은 악귀를 쫓기 위한
거란다.

악귀는 자기 얼굴 보기를 싫어하거든. 악귀가 들어왔다가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는 줄행랑을 치고 말지.

그러니까 보옥이 너는 그 거울에 얼굴을 보면서 얼굴 하장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왕부인이 양옆으로 갈라진 휘장 사이로 엿보이는 거울을 가리키면서
당부를 하였다.

"진종도 거울을 잘못 보다가 죽었잖아요. 악귀가 보는 거울을 내가
보아서는 안 되죠"

말귀를 알아듣는 보옥을 보고서 왕부인은 정말 혼인이 보옥의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데 효과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정신이 돌아온 보옥이 신부가 대옥이 아니라 보채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아무도 예측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침상 옆에 일렬로 죽 놓여 있는 꽃접시들은 아들 딸 잘 낳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비는 뜻이 담겨 있으므로 그 접시에 다른 음식들 올려놓지
말도록 해요"

이번에는 희봉이 꽃접시와 관련하여 주의를 주었다.

"꼭 등불을 끄고 휘장을 치고 나서 신부의 너울을 벗기도록 하여라.

그리고 밤새도록 등불을 켜서는 안 되느니라.

악귀가 신부의 얼굴뿐 아니라 몸을 보아서도 안 되니 말이다"

대부인이 다시금 당부를 하고 일어날 채비를 하였다.

다른 부인들도 대부인을 따라 신방을 나가면서 보옥을 향해 환한
웃음들을 지어 보였다.

보옥도 웃음으로 답례를 보내며 신부를 일으켜세워 침상으로 데리고
갔다.

신방 바깥 마당에서는 아직도 풍악이 울리고 있었다.

귀비 원춘의 상중이긴 하지만 사람들은 술 기운에 그 사실을 잠시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였다.

대부인과 다른 부인들은 여전히 염려스러운지 신방을 자꾸 돌아보면서
각자 처소로 돌아갔다.

하지만 희봉은 밤중에라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몰라 거처로 돌아가지
않고 신방 건넌방에서 밤을 새기도 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