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현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보유 대수가 6억대를 넘으며 연간 2,500만대
가량이 폐차되고 있다.

폐차의 심각성은 처리 비용이 높다는 것 외에 더스트(폐차 찌꺼기)로
인한 환경오염이 크다는 것이다.

이미 일본의 소비자들은 자동차산업이 원자력이나 화학산업을 제치고
환경오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보고 있다.

폐차의 환경문제화는 우리에게도 더이상 먼 앞날의 얘기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폐차의 리사이클링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환경에 대한 보호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는 환경보호를 빌미로 한 새로운 무역 장벽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폐차 문제의 해결은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이 가장 앞서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1972년에 이미 "폐기물법"을 제정하여 폐차 문제를 다루어
왔으며 1992년에는 "자동차 폐기물 방지, 삭감 그리고 재활용에 관한
법률 초안"(Abfallgesetz), 일명 폐차법을 제정하였다.

폐차법은 자동차 제조업자가 차의 최종 소유자로부터 폐차를 의무적으로
무료 회수토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폐차 회수에 드는 비용을 자동차 메이커가 부담하게 되는 것으로
자동차 메이커에 상당한 위협요소가 된다.

낮은 리사이클링 비율과 폐차 처리 비용의 급증으로 인해 고철 등의
수익을 이미 초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성을 갖춘 폐차 회수체제를
갖추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자동차의 리사이클링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즉 고철이나 부품 등을 거의 전량 재활용하게 되면 이론적으로 비용을
상쇄하고 이익까지 실현할 수 있다.

그래서 폐차법에서도 자동차의 리사이클링이 잘 되도록 메이커에
의무사항을 추가하고 있다.

즉 메이커는 매년 리사이클링 목표치를 설정하고 이의 달성 여부를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또한 생산 단계에서부터 부품의 해체 및 재활용, 부품 재질의 식별이
용이하게 자동차를 설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EU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자동차 리사이클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위원회에서는 장기 목표치로 2015년까지 자동차의 리사이클링률을
95%까지 높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기존의 "자원 보전 및 재활용법(RCRA)"을 독일의 폐차법에
근거하여 개정,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국에서는 폐차회수 의무화와 완전한 리사이클링의
실현을 위해 법률적인 규제를 이미 마련했거나 준비중에 있다.

폐차법은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선 독일에서조차 아직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 하면 폐차법의 법률적인 방안은 거의 완비된 상태이지만 이를
실행할 산업의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폐차법의 의무사항들은 제조업자에 무료 회수시스템, 해체 시스템
등 제반 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등 막대한 투자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BMW등 선진 메이커들은 10년 가까이 리사이클링 체제를 구축해
왔으며 기술적으로 이미 95%의 리사이클링이 가능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폐차법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경제성을 갖춘 폐차 회수 체계가
어느 정도 실현 가능해져 보이므로 조만간 폐차법도 효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면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품질 이외에 리사이클링이 우수한
자동차를 구매하게 되므로 당장 후발 업체의 현지 자동차판매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량을 판매한 경우에도 향후 폐차시 전량 무료로
회수하게 되면 낮은 재활용률로 인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그래서 중장기적으로는 메이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될 것이다.

이와 같이 폐차법은 향후 후발업체에 새로운 수출 장애요소가 될
전망이다.

자동차 메이커들은 이러한 위협 요소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시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경영측에서부터 폐차를 포함한 환경 친화적
경영이 향후의 경쟁 우위요소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선진국의 각종 폐차관련 법률규제와 선진 메이커의 대응
전략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또한 중장기 계획아래 전담부서 설치 및 연구개발을 통해 자사에
적합한 폐차 회수-처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환경투자에 한계가 있으므로 국내 및 해외 메이커와 전략적
제휴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실제로 BMW는 프랑스의 르노,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제휴를 하여 독일
지역에서만 르노와 피아트 차량을 더 폐차처리 해주면서 유럽 시장의
97%에 해당하는 지역에 리사이클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에서도 자동차의 리사이클링을 촉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자동차의 재활용을 규제하는 각종 제도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자동차의 리사이클링 제고를 위한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