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 7월 27일.

리비아 트리폴리공항에서는 착륙을 시도하던 대한항공 서울발 보잉여객기가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안개낀 활주로를 이탈한 비행기는 세동강이 났고 170명의 탑승객중 80명이
사망했다.

중상을 입은 승객들이 서로 먼저 밖으로 나오려고 아수라장인 가운데 약간
의 타박상만 입은채 멀쩡히 걸어나오는 한 동양인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칼리드 김.아랍어로 "불사신"이라는 뜻이다.

칼리드 김의 한국식 이름은 김영종이다.

그가 바로 리비아 등지에 의류 원단 양말 등을 수출해 리비아에 "대양의
신화"를 창조한 (주)대양 트리폴리지사장이다.

그가 입사하기 전 연간 100만달러에 지나지 않던 (주)대양의 대리비아
수출실적은 3,000만달러로 급증했다.

탁월한 아랍어실력을 바탕으로 현지인들과 친분을 맺고 깔끔한 일처리로
바이어들의 신뢰를 얻은 덕분이었다.

그가 리비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초년시절 주한 리비아대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터다.

남달리 아랍어에 재능을 가지고 있던 그는 대사관 추천으로 리비아 최고
명문인 알 파테 대학에 유학을 하게 된다.

리비아에서 발생한 한 사건을 옮기는 것이 그의 어학능력에 관한 어떠한
설명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 같다.

지난 86년초 리비아에 진출한 모 건설회사 직원 3명이 공사현장 지도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현지 공안당국에의해 첩보혐의로 구속 수감된 일이
있었다.

당시 졸업반이던 칼리드 김은 회사의 의뢰로 사건처리를 맡게 됐다.

재판이 한창일 무렵 그는 학업을 마치고 병역문제로 귀국길에 올랐다.

회사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통역요원을 고용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관할법원에서 칼리드 김 이외의 어떤 한국인도 통역요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군복무중이던 그는 매월 열흘씩 4개월간 리비아 법정으로 출장을 나가
사건해결을 도왔다.

마침내 3명의 한국인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현지 동양인중 아랍어를 제일 잘하는 사람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주요인사가 리비아를 방문해 카다피 리비아원수를 면담할 때
수차례 통역을 맡기도 할 정도로 유명인사가 돼 있다.

그는 건설회사에 근무하면서 대관청업무, 현지동향 조사업무, 각종 통역,
이민국 출입, 기타 회사의 각종 궂은 일과 함께 현지 진출 한인들의 개인적
인 문제해결을 위해 새벽까지 뛰어다녔다.

그러던중 92년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종업원 20명인 중소기업
"대양프로젝트"로 자리를 옮긴다.

92년 12월 대양의 트리폴리 지사장으로 취임한 그는 지난 10여년간 숱한
어려움을 딛고 체득한 현지생활 경험과 탁월한 아랍어 구사력을 바탕으로
리비아 의류 원단 수출무역업체들 사이에 태풍의 눈으로 부상한다.

88년 80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실적은 그가 입사한지 1년만인 93년에
1,000만달러로 증가했고 올해엔 3,000만달러어치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같은 실적은 92년 4월이후 유엔의 제재조치로 인해 외국경쟁업체들의
실적이 매년 50%씩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그는 13년간의 해외생활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이질감을 극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외국인과 이교도들이 자신에게 배타적인 감정을 보일 때마다 회의감에
휩싸여 번민에 빠져야 했다.

그때마다 그는 "내가 필요해 온 이상 내가 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칼리드"라는 회교이름을 갖게 됐다.

회교윤리를 준수하고 종교행사에는 가능한 한 참석해 현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라마단(금식기간)중에는 금연은 물론 철저히 금식하며 밤중에
비즈니스활동을 하는 등 현지적응에 힘썼다.

또 현지인 경조사에 꼭 참석해 그들의 친인척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리비아와 거래할때 가격 품질 등의 객관적인 요소 이외에 구매선과의 유대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아직도 리비아는 부족사회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쌓아놓은 인간관계는 구매예산 배정상황, 구매위원회 위원장은
물론 위원들과의 친분관계, 타경쟁사들의 정보입수, 계약후 신용장개설
과정의 철저한 추적과 관리에 커다란 도움이 되고 있다.

칼리드 김은 이외에도 정보화마인드를 최대한 활용해 비즈니스에서 경쟁사
를 한발 앞서고 있다.

자사의 제품과 구매조건들을 컴퓨터에 데이터베이스화해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즉석에서 제공하는등 정보화의 황무지나 다름없는 리비아사회에서
구매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일단 그의 사무실을 방문해 제품 소개를 듣는 바이어들은 체계적으로
정리된 각종 파일과 샘플들에 놀라게 된다.

그는 항상 상대방에 대한 신상파악을 철저히 한 뒤 비즈니스 상담에 임한다.

그리고 먼저 경쟁사 제품들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자사제품의 강점을 제시
한다.

구체적인 가격조건등은 구매선 측과의 추후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일단 구매선측이 자사제품에 대한 구매결정을 한 이후에는 요구조건 관철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예산으로 물품을 수입 분배하는 리비아의 특수한 무역관행과
2~3개월 이상의 장기간 구매상담 등에 기인한다.

하지만 요구조건 관철을 위해 단순한 원가개념에 입각한 설명보다는 제반
조건에 대한 결정을 구매선 측에 일임한다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완벽한 서류준비와 설득력있는 상황설명,부대비용에 대한 설명을 통해
자사 요구조건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면서 반영시킨다.

리비아의 주요 구매선들은 "개인적인 친분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각종 거래조건을 타사와 비교해보면 대양제품을 가장 신뢰할 수 밖에 없다"
며 "거래상담에서부터 물품수령까지 모든 거래조건을 가장 확실하게 처리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리비아의 국영수입업체의 한 간부는 "칼리드를 통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깨닫고 수정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우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친구다"라고 그를
평한다.

이같은 그의 활약 덕택에 대양은 리비아에서 가장 신뢰받는 업체가 됐다.

또 대양에도 리비아는 최대의 수출국이 됐다.

대양은 최근 의류 원단 양말 등 주종품목 이외에 교육훈련용 기자재 및
각종 기계류도 대량 수출하기 시작해 리비아 시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양은 현재 칼리드의 조언을 받아들여 아랍어 전공 전문인력을 3명이나
신규채용해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사무자동화기기의 구축 및
활용극대화를 통해 각종 거래때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업체로 인정받고 있다.

또 전문인력의 현지 장기연수를 실시하는등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국제화
현지화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젠 선후진국을 막론하고 완전경쟁시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각각의 정책입안과정에 미리 대비해 입찰전에 구매선의 선호품목을 파악하는
등 사전준비를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어요. 그래서 현지인과의
친밀한 인간관계가 더욱 중요합니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는 "수출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면서도 수출증대를 위해 필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국제화 교육과
경쟁력 극복을 위한 과감한 투자에는 뒤처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국제화" "현지화"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왜" "어떻게"라는 대목에 이르면 말문이 막히곤 한다.

칼리드 김의 삶은 우리에게 그 질문에 대한 한가지 해법을 보여주고 있다.

< 김주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