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5월24일.

경제학자 찰스다우와 출판업자 에드워드 존스가 다우존스 공업지수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다우지수의 마라톤은 시작됐다.

출발이후 33년간 꾸준히 달린 덕분에 29년9월 다우지수는 3백81의 고지에
오른다.

그러나 최고기록도 잠시.

불과 한달만인 10월 대공황의 태풍속에서 다우지수는 급락의 소용돌이로
빠져든다.

불과 3년만에 90%나 폭락하면서 32년7월 다우지수는 41로 뒷걸음질친다.

그이후 29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는 무려 22년.

54년에 가서야 3백80선을 재탈환한뒤 56년 어렵사리 5백대에 올라선다.

다우지수는 그이후 18년간 순항으로 72년 드디어 대망의 1천을 돌파한다.

출발에서 1천까지 무려 76년이란 긴 세월이 걸린 셈이다.

다우지수는 그이후 스피드를 내면서 다음 고지인 2천까지 기록을 15년으로
단축한다.

87년 1월8일 새해벽두.

뉴욕증시에는 2천돌파의 낭보가 날라든다.

그러나 그해 10월19일, 사상최대의 주가폭락사태인 "블랙먼데이"가 뉴욕
증시를 강타한다.

당시 다우지수는 하룻만에 무려 5백8포인트(22.6%)나 폭락했다.

그러나 다우지수가 블랙먼데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3천고지를 점령한 것은
불과 4년만이었다.

그이후 3년10개월여만인 95년 2월23일 드디어 4천을 넘어선다.

일단 4천벽이 뚫리자 다우지수는 무서운 속도로 상승행진에 돌입한다.

다우지수 상승곡선은 꺽임없이 뻗어 나가면서 9개월만인 11월21일 5천,
다시 11개월만인 96년 10월14일 6천선을 돌파, 세계증시의 활화산임을
증명했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