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의 시선"에는 여러 개의 이미지가 포개져 있다.

신화는 가고 현실만 남은 곳.호메로스의 "오디세이"와 J.조이스의
"율리시즈"를 원작으로 그리스와 발칸반도의 오늘을 대비시킨 영화다.

앙겔로풀로스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잃어버린 자아와 희망을 얘기한다.

그러나 그의 따뜻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신전에서 발칸반도로
걸어나오는 역사의 발걸음은 무겁다.

줄거리는 미국으로 망명했다 35년만에 돌아온 그리스 영화감독
"A"(하비 키이텔)가 마나키아형제의 없어진 필름을 찾는 여정.

그는 "20세기의 화약고"를 누비며 신화속에서 현실의 지층을 발견하려
하지만 그곳은 "안개가 끼어야 정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며 "보이지
않는 발자국과 목소리들만 살아있는 세상"일 뿐이다.

오디세우스의 고국 이타케가 트로이전쟁에 휘말렸듯 그의 고향도
원치 않는 현대사의 불길에 휩싸여 있다.

감독의 어법은 끊임없는 말줄임표와 상징으로 나타난다.

침묵과 롱테이크(길게 찍기)는 관객에게 생각할 여유와 감동의 폭을
넓혀준다.

철거된 레닌 동상과 사라예보의 비극, 안개속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슬픔.

그는 마침내 전설속의 필름을 찾았지만 그속에서 또 다른 역사의 아픔을
확인하고 절규한다.

마지막 장면의 독백은 1만2,110행의 "오디세이"를 축약시켜 들려준다.

"나 돌아올 땐 다른옷을 입고 다른이름으로 불현듯 다시 올께.

당신 정원과 달빛 창가의 레몬 나무.

며칠밤을 부둥켜 안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해줄께"

1인4역을 소화해낸 그리스 여배우 마야 모르겐스테론의 연기도 뛰어나다.

이는 원작 "오디세이"와 "율리시즈"를 엮는 씨줄이자 날줄로 작품의
짜임새를 튼실하게 받쳐준다.

비올라와 어코디언, 플루트의 애잔한 선율이 여운을 더한다.

96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19일 코아아트홀 씨네하우스 이화예술 뤼미에르 개봉)

<고두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