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성적에서 대부분 1등과 2등 각 등수간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소수점에 약간의 차이가,그것도 아주 주관적인 평가로 인하여 차이가
있을뿐.

시력 1.5와 1.4는 의학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1.4와 1.3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보면 1등과 꼴찌, 시력 1.5와 시각장애인은 백지
한장 차이도 안되는 셈이다.

사실 수많은 교통사고와 산업재해 앞에서 우리 모두는 언제 어떠한
장애를 입을지 모르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노화자체도 장애의 축적과정이요,삶 자체가 장애인으로 변화되는
과정이다.

청각.지체.정신지체장애인과 우리는 장애의 정도 차이일 뿐이지
모두 장애인이다.

서울의대 모교수가 얼마전 "생명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라는
책을 펴냈다.

흔들리는 나무이파리 하나에도 생명의 그지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장애인 비장애인이란 말은 마치 성적순위가 만들어낸 것과 같이
인간을 차별화한 언어에 불과하다.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생명 앞에서 장애는 어떠한 흠도 아무런
장애도 되지 못한다.

얼마전 장애우권익연구소가 주관하는 여성장애인대회가 있었다.

"빗장을 여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여성장애인은 우리 같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낮은 사회에서 여성과 장애라는 이중의 무거운 빗장이 채워져
있다.

과연 빗장을 채운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빗장을 여는 사람들은 누구여야 하는가?

우리는 선진국가들의 클럽인 OECD에 가입하였고 1인당 국민소득도
몇년내에 2만달러, 3만달러로 고소득국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빗장을 열고 나오려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바로 우리 이웃에 있다.

다같이, 똑같이 가장 아름다운 생명을 가진 우리 모두인데 말이다.

빗장이 채워진 사람들의 빗장이 열릴때, 비로소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고 진정한 선진국가 선진시민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