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한 상태에서도 어떤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어지는 몸짓은 지켜보는 사람의 호흡을 놓치지 않는다.

휘돌아가는 호리호리한 몸매와 강렬한 눈빛으로 무언가를 호소한다.

춤이 시작되자 방금 얘기를 나눌 때의 멋쩍어하던 표정과 수줍은 모습은
간 데 없다.

현대무용가 박호빈씨(28).

시적이고 깊이있는 안무와 춤사위로 무용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젊은 춤꾼이다.

서울예전 연극과를 나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무용에 뛰어든 것은 22살때.

그가 주목받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다른 사람에 비해 출발이 한참 뒤진
늦깎이 춤꾼임에도 벌써부터 독특한 춤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와 춤, 그 사이에서 꽤 오랜시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연극보다는 무용에서 나자신을 더 쉽게 표현하고 더 잘 전달할수
있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가 춤의 매력을 발견한 것은 서울예전에 다닐때 배우로서 신체훈련을
쌓기 위해 무용을 부전공하면서부터.

이 때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 봉산탈춤 전수자로 지정받기도 했다.

이후 "창무회" "서울현대무용단" "푸리 댄스 씨어터"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춤을 익혔고 특히 무용가 강만홍 강송원씨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93년에 홍승엽씨 등 젊은 춤꾼 5명과 함께 "댄스씨어터 온"을 결성,
당시 무용계로부터 "무서운 아이들"로 주목받았다.

94년초 조성주씨와 함께 안무한 "벽을 넘어서"를 포스트극장무대에
올리면서 안무가로서 이름을 얻고 문예진흥원에서 주최한 "94신세대
가을 신작무대"에서 "시인의 죽음"이란 작품으로 우수안무가상을 받았다.

올 6월 파리주재 스웨덴문화원에서 주최한 외국인작가 초청공연에서
"생각하는 새"라는 솔로공연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춤은 하나의 움직임뿐인 신체적 흐름에 정서와 정신적인 사상을 담아내야
감동을 줄수 있습니다.

저의 춤도 제가 가진 신체조건으로 제가 살아온 삶과 정서를 표현하는
겁니다"

그가 안무한 춤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주제는 "인간의 고독" "외부와
단절된 현대인의 모습".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고독"이 있어요.

그 고독이 어디서부터 왔는가를 찾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시적 감각이 뛰어나고 명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그의 춤속에
담겨진 그가 살아온 삶과 정서는 어떤 것일까.

스스로 말하듯 내성적인 탓인지 춤얘기는 술술 풀면서 개인적인 얘기를
털어놓는 데는 무척 뜸을 들였다.

불교 집안에서 2남3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어릴때 말수가 적었고 홀로
사색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애늙은이" "영감".

고등학교때 우연히 연극반에 들어가게 된 것이 그의 삶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무대에서 다른 사람이 돼서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데 쾌감을 느꼈어요.

그때까지 제 안에 억눌려 쌓였던, 어떤 한 곳에 쏟고 싶었던 그 무엇이
분출구를 발견했던거죠"

강한 자기표현 욕구가 연극으로, 결국 무용으로 그를 인도한 셈이다.

"나 자신이 절실히 느끼는 문제를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수
있고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호소력을 발휘할수 있는 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저의 궁극적인 꿈입니다"

<글 송태형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