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말 일본기업들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컬럼비아영화사
록펠러센터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을 사들였다.

또 해외기업들을 인수하지 않을 경우 때론 전혀 예상치도 않은 곳에
자체공장을 세워 나갔다.

최근 들어서는 한국의 대기업들이 해외기업 인수와 해외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이미 미국의 AST리서치와 제니스를 인수했다.

지금은 로터스(영국)와 포커(네덜란드) 등 유럽기업들을 사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한국 기업들의 이같은 일본식 해외진출은 현명한 것일까.

한마디로 이렇다 저렇다 하기가 어렵다.

한국의 기업들들은 해외시장 확대와 브랜드및 신기술 확보를 위해 해외
기업들을 사들이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기업들의 요란한 해외기업 인수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기업들은 항상 기록적인 가격에 미국기업을 인수했다(하지만 현재
록펠러센터는 다시 미국인 손에 넘어가 있다).

마쓰시타와 소니는 자신들이 사들인 할리우드 영화사경영에 실패, 다시
매각하고 말았다.

일본 기업들은 인수한 해외 거대기업들의 경영엔 실패했지만 해외에
세운 공장 경영에는 성공했다.

공장부지 선정에 신중을 기한 것이 성공요인중 하나였다.

디트로이트와 같이 잘 알려진 훌륭한 공장부지를 피하고 스미르나지역과
같은 외곽지역에 자동차 생산공장을 세웠다.

일본기업들의 이러한 공장부지 선정 전략은 공장운영에 주효했다.

공장운영방식을 모르는 외곽지역의 현지인들을 고용, 이들을 일본식
경영에 손쉽게 적응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이 해외공장에서 일본기업들처럼 성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80년대의 일본기업들과 달리 한국기업들은 해외경쟁업체들을
앞서갈 만한 이렇다할 세계 첨단기술을 개발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진국기업들도 한국의 대기업들처럼 지난 10년간 일본식 경영이나
기술을 배우고 모방해 왔다.

한국 대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부닥치는 경쟁상황은 10년전 일본의
경우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직면한 또 하나의 위험이 있다면 그것은 자체 해외
공장을 건설하기 보다는 해외기업 인수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물론 인수가격이 적당하다면 허약한 해외기업을 사들여 건실한 흑자기업
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체공장을 세워서 성공하는 것 못지 않게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기업들이 노리는 외국기업들은 아무리봐도 선뜻
내키지 않는 기업들이다.

삼성이 타깃으로 삼고 있는 네덜란드의 중형항공기 제작업체 포커와
대우가 인수할 예정인 프랑스의 톰슨 멀티미디어는 적자덩어리인 국영
기업체로 너무나 잘 알려진 기업들이다.

그렇다고 한국기업들 나름대로의 인수전략과 이유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시장이 점차 개방되고 있어 기업들도 향상된 기술 습득이 절실하다.

해외기업 인수는 이를 위한 한 방편이 될수 있다.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도박에서 성공할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은 개발도상국 시장에 발빠르게 투자한다.

지난해 대우는 폴란드의 자동차업체 FSO를 인수했다.

한국기업들은 중국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신중한 투자전략을 취하고 있는 일본기업들을 앞질러 투자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제조기술이 세계적 수준에 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들
국가내에서는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저개발국에서 성공적으로 공장을 경영하거나
현지인들에게 상품을 팔아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다.

구소련과 아시아에서 한국산 자동차들에 대한 수요는 대단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 국가에 대한 투자위험 또한 만만치 않다.

"After Japan", 5, Oct, 1996, (c) The Economist, London.

< 정리=김홍열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