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에선 요즘 아남산업을 "잘 나가는 아남"이라고 부른다.

반도체 경기불황으로 삼성전자 현대전자 LG반도체등 대형 메이커들이
울상을 짓고 있는 반면 유독 아남산업만 흑자폭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또 미국 TI와 기술합작으로 24년동안이나 별러왔던 웨이퍼 가공분야에도
진출하게 된데다 부천 공장에 신증설을 하지 못하게 했던 정부의 규제도
풀렸다.

아남으로서는 경사가 겹친 셈이다.

아남산업의 올연말까지 순이익 예상치는 3백50억원.

지난해(2백70억원)보다 30%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작년의 성장률(10%)을 큰 폭으로 웃도는 수치기도 하다.

반도체 3사가 불황의 여파로 적자위기에 몰려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
이다.

아남이 반도체 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속에서도 흑자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경기침체가 공급과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데 있다.

아남의 사업분야는 후공정(반도체 조립)이다.

전공정(웨이퍼가공)을 거친 제품을 받아 조립한뒤 메이커에 다시 넘기는게
아남의 주된 사업분야다.

공급과잉이라는 폭풍이 아남에겐 순풍의 역할을 한 것은 이같은 이유에서다.

사실 반도체 메이커들은 지난해 공장을 경쟁적으로 신증설했다.

반도체 시장이 작년에 이어 호황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에서 였으나 공급
과잉으로 이어지면서 불황이 나타났다.

그러나 아남은 이 덕을 톡톡히 봤다.

후공정업체인 까닭에 메이커들이 생산을 늘릴수록 일감이 늘어났던 것.

경기침체가 효자노릇을 한 셈이다.

그래서 불황에 허덕이는 업계의 시샘(?)도 받고 있다.

황인길 아남산업사장은 지난 13일에는 반도체 업계 사장들을 경기도 용인
은화삼CC로 초청해 골프대회를 열었다.

본래 분기에 한번씩은 사장단이 골프를 하지만 이번에는 김광호 삼성전자
부회장등이 "잘 나가는 아남에서 호스트하라"는 압력 아닌 압력을 가했다는
후문이다.

황사장과 김부회장과는 서울고등학교 동기동창(58년졸업)으로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내는 사이다.

최근 고려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긴 김주용 전현대전자사장과는 한 고향
(전남 강진)에서 함께 자란데다 아남그룹 김주진회장과 김사장이 6촌간
이어서 원래 흉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그래서 골프가 끝난뒤 회식에서도 다른 업체 사장들은 음식을 비싼 것만
시킴으로써 "잘 나가는 아남"에 부러움 섞인 축하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