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사람은 그일에 깊이 빠져야 한다.

깊이 빠져서 일과 나자신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있으니 주색과 잡기이다.

사람이 한 일생을 살아가는데는 여러가지 함정이 있다.

가나 질병 사고같이 처음부터 무서운 함정도 있고 주색잡기와 같은
달콤한 함정도 있다.

우리는 어릴때 "술을 적당히 마셔야 한다.

여자에 빠져 신세망친 사람 많다.

잡기에 능하면 큰 일을 못한다"라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칸트는 매일의 생활이 시계같이 정확해서 그가 산보하는 것을 보고
이웃사람들은 시계를 맞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같은 범부의 생활이야 술도 한잔해서 흥도 돋우고 아름다운
여자에게 마음도 빼앗기며 바둑이나 골프로 스트레스도 풀면서 살고싶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백가지 약중의 으뜸이라고 한다.

한잔 마시고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얼마나 흐뭇한 일인가.

그러나 그 정도를 넘으면 술은 모든 불행의 근원이다.

그렇게 때문에 술을 잘마신다는 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가 아니고
흥을 잘 돋우어서도 아니다.

술은 마시고 실언이 없고 다음날 지장이 없어야 한다.

옛사람들은 진짜 풍류객은 즐기되 빠지지 않아야 한다(락이불탐)고 하였다.

술 뿐아니라 모든 주색잡기는 낙이불탐해야 한다.

그선을 넘어서 습관적으로 여자를 쫓는 사람, 밤낮없이 화투나 바둑에서
손을 떼지 않는 사람,이 모두가 남보기에도 추하고 본인의 생활의 기틀을
흔들어 놓는다.

주색잡기는 중독이 심해서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가 어렵다.

또 주색잡기는 더 강한 자극과 환락을 추구하여 마리화나 성병 가정파탄
도박 폭력 등 온갖 범죄를 불러 일으켜 개인적인 불행으로 끝나지 않고
국가적인 재앙으로 번진다.

젊은날 술과 바둑으로 허송한 허구한 날이 아깝기만 하다.

그 시간을 어학이나 컴퓨터에 정진했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유용했겠는가.

그 정력으로 일에 몰두했더라면 얼마나 내자신이 성숙했을 것인가.

이제 나이들어 뒤늦게 깨닫고 보니 일모도원, 할 일은 많은데 날이
저물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