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갑부들의 혼수품목 1호는 뭘까.

뜻밖에도 "위자료 포기각서"다.

미국에서는 남편의 재산중 절반은 법적으로 "아내소유"다.

이혼 한번할 때마다 재산이 절반씩 날라가는 셈이다.

그래서 위자료 포기각서는 미국 갑부들의"결혼 필수품"이다.

화장품업체 레블론의 소유주 로널드 페렐맨은 두번의 뼈아픈 경험끝에
위자료포기 각서 신봉자가 됐다.

그가 첫째부인과 이혼할때 지불한 위자료는 8백만달러.

두번째 부인과 갈라설때는 무려 8천만달러의 거액이 들었다.

위자료문제로 단단이 혼이 난 페렐맨은 지난 94년 세번째 결혼때는 위자료
포기각서를 받아냈다.

현재 세번째 부인과의 이혼심사가 법원에 계류중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싼 값에"이혼할수 있을 것으로 페렐맨은 확신하고
있다.

세계최고의 갑부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예외가 아니다.

독신이었던 지난 93년 빌게이츠는 한 컴퓨터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위자료
포기각서 따윈 절대 안쓰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천하의 빌게이츠도 별 수 없었다.

그 이듬해 막상 결혼하게 되자 그는 절친한 친구를 통해 부인 멜린다
프랜치에게 위자료 포기각서를 들이밀었다.

프랜치는 그 각서에 사인했다.

천재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위자료 포기각서 쓰는데는 영
바보스러웠다.

지난 85년 여배우 에이미 어빙과 결혼당시 그는 종이 한장을 쭉 찢어
위자료 포기각서를 썼다.

그후 4년만에 이들 부부는 파경을 맞았다.

법원은"변호사 입회가 없었다"는 이유로 각서무효 판결을 내렸다.

덕분에 어빙은 스필버그 금고에서 2억달러를 챙겼다.

반면 유명 의류브랜드 게스의 창업자 아르만드 마르시아노는 "선견지명"
덕분에 거액 위자료 지불을 피한 행운아다.

마르시아노와 패트리시아 구애즈 커플은 지난 70년대 프랑스에서 결혼
하면서 서로의 재산을 모두 포기한다는 각서를 썼다.

당시로선 대단한게 아니었다.

둘다 무일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92년 마르시아노에게 애인이 생겼을때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사이 창업한 게스의 자산규모는 5억달러.

마르시아노의 연간 수입도 무려 5백만달러였다.

문제는 현거주지인 비버리 힐즈의 관할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의 태도였다.

"25년전 프랑스에서 쓴 각서는 무효"라는 파결이 내려지면 마르시아노는
지금까지 모은 전재산의 절반을 아내에게 떼줘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마르시아노편이었다.

"유효" 판결이 나온 것이다.

위자료 포기각서는 일신을 위한게 아니라고 이들 사업가들은 강변한다.

대책없이 이혼했다간 회사의 운명에도 치명타가 될수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를 예로 들자.

이혼할 경우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소유지분 24%중 절반은 부인의 손에
넘어간다.

주주들에게나 회사에게 모두 피해다.

갑부들에겐 결혼도 이혼도 "사업"의 연장선이란 얘기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