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저는 대관원 여자들이 자기를 친절하게 대해주므로 희봉의 말을
듣고 거처를 옮기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사흘쯤 지나자 우이저의 시중을 드는 희봉의 시녀들이 슬슬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다.

특히 선저라는 시녀가 가장 건방지게 굴었다.

그것은 희봉으로부터 이미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우이저가 선저를 불러 심부름을 시켰다.

"벌써 머릿기름이 다 떨어지려 하는구나.

급히 이곳으로 옮겨오는 바람에 일용품들을 많이 챙기지 못했구나.

내 짐들을 하인들을 시켜 형님 집으로 옮겨놓는다고 했으니 형님에게
가서 머릿기름을 좀 얻어가지고 오너라. 내 짐에서 찾아서 가지고
와도 좋고 형님 것을 빌려 와도 좋고"

선저는 우이저가 희봉을 가리켜 형님, 형님 하는 것이 못마땅하여
속으로 흥, 형님 좋아하네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작은아씨도 참, 큰아씨가 얼마나 바쁘신 몸인지 알기나 해요? 하루에
부절을 떼어주는 일만 해도 수십 건이 넘어요.

게다가 웃어른들 섬기랴, 지체 높은 분들 경조사 챙기랴, 수백 명이나
되는 아랫사람들 거느리랴 정신이 하나도 없다구요.

그런데 작은아씨 머릿기름 챙겨주게 생겼어요? 작은아씨도 양심이 있으면
큰아씨를 돕지는 못할 망정 귀찮게 하지나 마세요.

며칠만 있으면 큰아씨 집으로 갈 텐데 그때까지 좀 참아요.

머릿기름 아직도 조금 남았던데 그거 아껴쓰면 되잖아요"

선저가 얼마나 무안을 주는지 우이저가 얼굴이 뜨뜻해질 지경이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시녀라면 혼을 내줄 수도 있지만 희봉의 시녀인지라
함부로 욕을 해댈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할수 없이 화를 참다 보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쿡쿡 쑤시는
느낌이었다.

시녀들은 식사 때가 되어도 우이저에게 밥을 잘 차려주지 않고 먹고
싶으면 스스로 차려먹든지 말든지 하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하였다.

우이저는 일일이 시녀들과 아옹다옹 다투기도 싫어서 손수 밥을 차려
먹기도 하였는데,울화가 치미는 가운데 밥을 먹으니 소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런데 희봉이 종종 놀러올 때마다 우이저가 시녀들의 행실에 대하여
고자질을 하기도 전에 으름장을 놓으며 시녀들을 닦아세우기 일쑤였다.

"너희들, 작은아씨께 조금이라도 소홀히 해봐라. 주리를 틀어놓을
테니까. 알았어?"

"네, 네"

시녀들은 그저 슬슬 기는 척하였다.

이런 판국이라 우이저 자기까지 나서서 시녀들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험담을 늘어놓기가 뭐하였다.

오히려 우이저는 혼이 나는 시녀들을 두둔해주곤 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