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노사관계법 개정작업이 25일 김영삼 대통령의
논의시한 설정으로 마지막 초읽기에 몰리게 됐다.

김대통령은 이날 노개위에 메시지를 보내 노사간 대타협을 촉구하면서
다음달 9일까지 논의결과를 일단 보고해 주도록 요청했다.

우리는 노개위 활동에 대한 대통령의 이같은 개입을 당초 의도대로 법개정
을 연내에 마무리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 이를 적극 환영한다.

김대통령의 "신노사관계 구상"에 따라 지난 5월9일 발족한 노개위는 그동안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그같은 성과가 25일 노개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제1차 노동법개정안
내용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복수노조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문제,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시간제
등 핵심 쟁점들에 대해서는 단 한가지도 이렇다 할 합의를 끌어내지 못함
으로써 노개위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냈다.

특히 그동안의 줄다리기 협상에서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판단한 민주노총
이 이달초 돌연 전체회의 불참을 선언하면서 노개위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
됐다고 해야할 것이다.

대통령의 대타협 요청으로 열흘남짓 시간을 벌게 된 노개위는 내달 4일
다시 한차례 더 전체회의를 열겠다는 계획이지만 지금의 분위기로 보아
대통령이 정한 시한내에 대타협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솔직하게 말해 수십년간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쟁점들에 대해 몇달내로
완전 합의하여 개혁안을 만들어내라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다고 할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새로운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대통령의 결단 뿐이다.

노사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비단 노사간에만 빚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노-노갈등은 물론 최근에는 경영계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들리고 있으며
이같은 갈등이 정부와 청와대 내부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이같은 총체적 갈등을 수습할수 있는 길은 오직 대통령의 결단 뿐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노사개혁을 세계화를 위한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으로 선언한 이상 그같은
핵심전략이 표류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여기서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미합의사항은 다음으로 미루고
합의사항만으로 법을 개정하거나 아예 법개정 자체를 연기하자는 주장이다.

주로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이같은 주장은 노사개혁의
본래취지를 망각한 매우 안일하고 한편 위험하기까지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개혁은 "삶의 질 향상"과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두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며 지금 못하면 영영
어려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결론은 하나다.

노사도, 정부도, 정치권도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라면 노사개혁에 시동을
건 대통령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서는 수밖에 없다.

노개위를 대통령직속 자문기구로 만든 것도 노사개혁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이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해할수 있다.

더이상 노개위에 맡겨 놓는다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