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맥주가 "하이트"를 맥주시장에 내놓은지 3년반만에 정상을 차지했다.

올 상반기 5,567억원의 매출을 기록, OB맥주를 700여억원이나 앞질렀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져온 OB성을 함락시키는 쾌거를 이룩해낸 것이다.

조선맥주의 성공신화는 기업이 최고경영자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수
있는가를 보여준 모델케이스이다.

조선맥주는 5년전까지만해도 시장점유율이 20%대에 불과한 만년 2위업체
였다.

사내에는 패배의식이 팽배했다.

영업사원들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기업도 60세에 가까운 노령기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창업주 박경복회장은 어려운 선택을 했다.

차남 박문덕부사장을 지난 91년 3월 사장에 전격 발탁한 것이다.

박사장은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않는 공격적 경영에 나섰다.

지난날의 보수적 경영에 메스를 가했다.

마케팅부를 신설하고 영업부문을 강화했다.

신제품 드라이마일드와 흑맥주 스타우트를 잇따라 내놓았다.

드라이마일드는 8개월만에 1,000만상자가 팔렸다.

"하이트"는 회갑을 맞은 조선맥주를 회춘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이트는 93년봄 시장에 나오기가 무섭게 돌풍을 몰고 왔다.

하이트는 임직원들의 2위 콤플렉스를 말끔히 씻어냈다.

"1위를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한 것이다.

박사장의 섬세한 예술적 감각도 드라이마일드 하이트등 연속히트작을
탄생시키는데 큰몫을 했다.

한달에 2~3번은 화랑가를 찾는다.

집무실은 김창열 장욱진화백등 국내 비구상작가들의 작품들로 빈자리를
찾아볼수 없다.

예술적 섬세함은 소비자의 기호변화를 정확히 집어내는 힘을 발휘했다.

"맥주가 대중주임에도 양주(100%)보다 높은 주세율(150%)이 적용된다는
것은 형평에 어긋납니다"

그는 맥주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주세율이라고
지적한다.

박사장은 요즘 사업다각화에 힘을 쏟고 있다.

주류 식음료 유통 건설 레저등 6개부문을 확대, 2000년대 40대기업으로
도약하겠는 것이다.

< 서명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8일자).